유가전쟁 '겹악재'에 차화정 우수수...솟아날 구멍 있나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0.03.13 05:00
수정 2020.03.13 05:33

KRX에너지화학지수 6일 만에 14% 하락...현대차 10만원선 붕괴

밸류에이션 매력은↑...금호석유·한화솔루션·현대모비스 등 주목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석유 굴착기와 펌프 잭 모습.ⓒ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유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이어가면서 자동차·화학·정유주(차화정)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커졌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국제유가 폭락으로 주식시장 전망이 어두워진 가운데 증권가에선 당분간 저유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기초체력이 안정적이고 저평가된 차화정의 조정은 저가 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KRX에너지화학지수는 전장 대비 6.11% 하락한 1618.13으로 거래를 마쳤다. KRX에너지화학지수는 LG화학·SK이노베이션·롯데케미칼·에쓰오일·GS·한화솔루션·금호석유 등 에너지화학 섹터 대표 종목들을 담고 있다. 이 지수는 지난달 2099.01에서 한 달여 만에 23% 떨어졌고 최근 6거래일간 14% 내려앉았다. KRX자동차지수도 최근 6거래일 동안 약 15% 빠졌다.


이날 주가 하락은 코스피가 장중 5% 넘게 폭락해 8년 5개월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주식시장 전반이 요동친 영향이 컸다. 특히 지난 9일 20%대 대폭락을 기록했던 국제유가가 10% 급반등한지 하루 만에 다시 떨어져 유가 관련주 중심으로 충격이 불가피해졌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6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을 대비해 추가 감산을 협의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가 무산됐다. 여기에 사우디가 증산과 가격 할인으로 맞대응하면서 국제유가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오는 2·3분기 전망을 배럴당 30달러로 낮춰 잡고 최악의 경우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장중 한때 9만4500원까지 하락하면서 사흘 연속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자동차업종은 지난달 초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중국산 와이어링 하네스 수급 차질이 주가 하락을 촉발시켰다. 이어 선진국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소비자 활동성 둔화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 전망이 잇따랐다. 최근에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신흥시장 수요 둔화 문제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옮겨가면서 주가 회복 지연이 예상되고 있다.


임은형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는 다른 완성차 업체 대비 신흥시장 판매 비중이 높아 저유가에 불리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며 “유가가 30달러대로 급락하면서 2015~2016년에 있었던 신흥시장 수요둔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시기 신흥시장의 통화가치 급락도 현대·기아차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만 전문가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대차의 시스템 관리·주주환원 정책 등이 악화된 투자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권순우 SK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판매량보다 수익성이 중시되고 있는 자동차산업 트렌드와 현대차그룹의 정책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 수요 둔화를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과 판매, 재고와 인센티브, 신차 출시 및 딜러망 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점차 중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임 연구원은 “단기간에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선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회사의 자신감을 보여줄 액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우려 요인 속에서도 정책과 이연 수요 효과를 통한 하반기 회복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면한 리스크 요인을 감안해도 최근의 주가 폭락은 다소 과도한 수준”이라며 하반기 수익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높은 현대모비스를 최우선주로 추천했다. 현재 시점에서 주가 반등 가능성과 상승 여력이 가장 큰 종목이란 설명이다.


정유·화학 역시 유가 급락으로 정제마진이 낮아지면서 올해 1분기 실적감소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추가로 급락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반등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현재 두 국가 간 갈등은 정치적 의도가 짙어 이전보다 갈등 국면이 길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성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갈등은 셰일 혁명 당시보다 정치적 의도가 짙은데 사우디아라비아(왕위 계승), 러시아(3선 개헌) 모두 단시일 내 내부 결속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셰일 혁명 이전수준까지 회복하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펀더멘털 수준도 감안했을 때 갈등 국면은 이전 2015년 셰일혁명 당시보다 길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 중국 전방 가동률 개선 움직임과 미·중 무역협상의 긍정적 흐름, 각국의 경기부양 의지 강화를 보면 수요의 각도가 가파르게 재설정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금융위기 수준의 현재 밸류에이션도 강한 지지선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정유보다 석유화학이 상대적·절대적 극심한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석유화학 업체의 현재 밸류에이션은 2014년 말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 저점 대비 할인인 반면, 정유 업체는 당시 대비 할증 거래”라며 “회사의 펀더멘털과 밸류에이션을 감안하면 정유보다 석유화학의 회복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체력이 양호하고 과도하게 하락한 금호석유,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효성화학을 추천했다.


국내 석유화학은 공급 확대로 당분간 저유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상대적 원가 경쟁력에서도 유리해질 전망이다. 나프타분해설비(NCC)는 유가 하락과 함께 절대 원가(나프타)가 떨어지면서 제품마진 확보가 용이해지는 측면이 있다. 이희철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의 PBR이 0.5x 내외로 주가가 낮아진 점은 NCC 주가의 반등 요인”이라며 “차별화 제품을 보유한 LG화학, 금호석유 등은 전방 수요 회복 시 개선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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