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안 여전한데…은행 대기업 대출 다시 '기지개'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2.11 06:00
수정 2020.02.10 17:49

올해 첫 달에만 5대銀 1.7조↑…지난해 3조 감소 딛고 반등

정책 풍선효과에 경제 회복 기대…신종코로나 등에 부메랑 우려

국내 5대 은행들이 올해 들어 한 달 동안에만 대기업을 상대로 한 대출을 2조원 가까이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서 대출 위험이 커지자 대기업 여신을 3조원 넘게 줄였던 지난해와 사뭇 달라진 흐름이다. 가계 빚을 잡으려는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다시 기업 대출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경제가 이제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란 장밋빛 기대에 따른 이 같은 행보가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들이 보유한 대기업 대출 잔액은 총 73조8190억원으로 지난해 말(72조792억원)보다 2.4%(1조7398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봐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곳들이 대기업 대출 확대에 주력한 모습이다. 우선 국민은행이 대기업들에게 내준 대출은 같은 기간 17조7865억원에서 18조5163억원으로 4.1%(7298억원) 증가하며 최대 규모를 유지했다.


이어 우리은행 역시 14조9918억원에서 15조5564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4조4828억원에서 14조7804억원으로 각각 3.8%(5646억원)와 2.1%(2976억원)씩 대기업 대출이 늘었다. 신한은행도 13조8645억원에서 14조468억원으로 대기업 대출이 0.6%(823억원) 늘었다. 농협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10조8536억원에서 0.6%(655억원) 증가한 10조919억원을 기록했다.


대형 은행들의 이런 대기업 대출 추세는 지난해와 크게 상반되는 상황이다. 조사 대상 은행들의 지난해 말 대기업 대출 보유량은 전년 말(75조1318억원)과 비교하면 4.1%(3조526억원) 줄어든 액수다. 이 기간 농협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대 시중은행들의 대기업 대출 잔액이 일제히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처럼 올해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에 속도를 내는 이유로는 우선 정책적 요인이 꼽힌다. 정부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가계 부채를 조절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은행들이 그 대안으로 기업 대출에 다시 눈을 돌렸고,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보다 상대적으로 상환 여력이 우수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해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들에게 가계 대출 연간 증가율을 5%대 이내에서 관리하라고 권고하며 사실상의 가계 빚 한도 총량제를 주문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대형 은행들 대부분이 이를 지키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아직 금융당국이 공식적인 메시지를 내진 않고 있지만, 이를 기반으로 올해도 은행 가계 대출 조이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지난해 4대 은행들의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은 ▲농협은행 9.3% ▲신한은행 9.0% ▲하나은행 7.8% ▲우리은행 5.6% ▲국민은행 4.7% 등 순이었다.


아울러 다소 개선 추이를 보이고 있는 여신 건전성도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에 힘을 낼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5대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 잔액 가운데 1개월 이상 연체된 금액의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평균 0.25%로 1년 전(0.36%)보다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올해 경제 여건이 지난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전망도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 확대에 일조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3%다. 지난해(2.0%)보다 0.3%포인트 높은 수치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당장 예상만큼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더라도 경기가 나아졌다고 말하긴 힘든 수준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2.3%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닥친 직후인 2009년(0.8%) 이후 최저치에 불과하다.


대기업들의 경영 환경 예측도 아직 어두운 편이다. 지난 달 국내 전체 대기업들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3에 그쳤다. 업황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기준치인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비관하는 기업이 낙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달(80)보다는 오르긴 했지만 지금도 앞날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기업들이 훨씬 다수란 얘기다.


더욱이 예기치 못한 중국 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라는 변수는 연초부터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과거 메르스와 사스가 번졌을 당시 우리 경제가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이번 우한 폐렴을 두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걱정 어린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메르스 피해가 확산됐던 2015년 2분기 우리나라의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0.2%로 전 분기(0.9%)에 비해 크게 둔화됐었다. 사스의 영향은 훨씬 더했다. 사스가 국내에 확산됐던 2003년 2분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0.2%까지 추락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사스가 해당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떨어뜨렸다고 분석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 빚 관리를 위한 정부 정책의 풍성효과와 경기 낙관론이 맞물리면서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이 증가 전환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경제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지나치게 공격적인 여신 증대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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