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총선, 국운 가른다] 김병준, 보수 '소방수'에서 '자산'으로

정도원 기자
입력 2020.01.07 04:00
수정 2020.01.07 05:14

임기 중 한국당 지지율 가장 크게 끌어올려

황교안과 직접 만나 "서울 험지 출마" 결단

한국당, 보수 자산 '안착'에 노력하고 있나

임기 중 한국당 지지율 가장 크게 끌어올려
황교안과 직접 만나 "서울 험지 출마" 결단
한국당, 보수 자산 '안착'에 노력하고 있나


김병준 자유한국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자유한국당은 여섯 명의 지도자를 거쳤다. 새누리당에서 당명을 변경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우택 당대표권한대행, 홍준표 대표, 김성태 당대표권한대행,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현재의 황교안 대표다.

임기 중에 정당 지지율을 가장 많이 끌어올린 인물은 김병준 위원장이다.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인명진·정우택·홍준표·김성태 대표 시절 10~13%를 오가던 한국당 지지율은 김병준 위원장 시절 20%에 올라섰다. 지금 '황교안 체제'에서의 한국당 지지율은 23%다.

(한국갤럽 자체조사. 인명진 2017년 1월 4~5일 설문 12.0%, 같은해 3월 21~23일 설문 13.0%, 정우택 2017년 7월 4~6일 설문 10.0%, 홍준표 2018년 6월 19~21일 설문 11.0%, 김성태 2018년 7월 17~19일 10.0%, 김병준 2019년 2월 26~28일 20.0%, 황교안 2019년 12월 17~19일 23.0%.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리얼미터 설문을 살펴봐도 한국당 지지율은 인명진 위원장 시절 12.2%에서 13.7%로 오른 뒤, 정우택 대행 시절 15.9%, 홍준표 대표 시절 16.7%, 김성태 대행 시절 17.0%로 조금씩 오르다가 김병준 위원장 시절에 28.8%까지 대폭 뛰어올랐다. 지금 황교안 대표 하에서의 한국당 지지율은 31.4%다.

(인 위원장은 레이더P 의뢰 2017년 1월 2~6일과 MBN·매일경제 의뢰 3월 20~24일, 정 대행은 CBS 의뢰로 2017년 6월 26~30일, 홍 대표는 CBS 의뢰로 2018년 6월 18~22일, 김 대행은 CBS 의뢰로 2018년 7월 9~13일, 김 위원장은 YTN 의뢰로 2019년 2월 25~28일, 황 대표는 YTN 의뢰로 2019년 12월 23~27일.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 살려낸 혁혁한 공로
퇴임 이후에도 대구·경북 행보 등 주목받아
고향 고령에서는 간곡한 출마 요청 선긋기도


자유한국당 출범 이후 당 지도자별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등락 추이.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김병준 전 위원장은 임기 중 정당 지지율을 10(갤럽)~11.8%(리얼미터)나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그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셔놓고서도 그 이후 당의 자산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단순히 정당 지지율 수치만 끌어올린 게 아니라, '아이노믹스'와 '평화 이니셔티브'라는 경제정책대안과 안보정책대안을 각각 마련하고 당헌·당규와 전국 당협 조직을 점검했다. 그 결과 당 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한국당은 창당 이후 최초로 전국 권역별 순회를 거쳐 정식의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다.

김 전 위원장측 관계자는 "거의 사망 직전의 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던 당을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서 싸울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놓고 나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퇴임 이후로도 김 전 위원장의 정치행보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대구에서 자라났다. 자연스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피폐해지고, 한편으로는 일부 왜곡 현상이 엿보이는 TK(대구·경북) 권역의 정치 정상화에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전 위원장이 스스로 "대구·경북이 바로서야 당과 보수정치가 바로서고 정치 세력 간의 균형도 회복된다고 판단했다"며 "부족한 사람이지만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그 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지난해 6월말 고령군청 공직자 특강을 위해 고향을 찾았을 때에는 지역민들로부터 간곡한 출마 요청이 있기도 했다. 인구 3만 고령군에서 고향을 발판으로 '큰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소박한 여론이었다.

"대구·경북 바로서야" 과제라 판단했으나
황교안과 회동 거치면서 "서울 험지" 결단
이후 범여권 비판 집중…당내 비판 말아껴


자유한국당 출범 이후 당 지도자별 리얼미터 정당 지지율 등락 추이.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 공석인 경북 칠곡·성주·고령에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데 이어, 지난해 11월 19일에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서울 험지 출마 등 당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정치문법과는 배치되는 행보다. 일반적으로는 고향 의석이 공석이 된 것 같은 호기(好機)가 달리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구의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말뚝을 박고 버티고 있는 것도 방법이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데에는 여러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1월초 황교안 대표의 요청으로 김 전 위원장과 황 대표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는 김 전 위원장에게 직접 "험지에 출마해달라"고 요청했다.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기에 잠시 숙고의 시간을 갖던 김 전 위원장은 11월 중순에 결단을 내리고, 19일에 "수성갑에 불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계속되는 장외투쟁과 강경 일변도 노선, 당의 대책없는 우경화 등을 비판할 때에도 김 전 위원장은 말을 아끼고 참았다.

이 기간 중 김 전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범여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냈으나, 지도부 비판은 하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측 관계자는 "대여 전선 균열도 걱정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애써 재건한 당 리더십에 상처가 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盧청와대 '한솥밥' 文 폭주에 위기감 증대
"의회권력까지 내주는 것은 역사앞의 범죄
유혈 낭자하게 싸우다 죽어도 좋다" 각오


김병준 자유한국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2·27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대표에게 당기를 전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지난해 12월 17일 "당대표를 지냈거나 지도적 위치에 있던 큰 정치인은 당과 협의해 전략적 거점 지역에 출마해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협의'에 먼저 나서야할 주체는 당연히 당이다. 당 지도부가 총선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을테고, '텃밭'과 '전략지역', 험지와 사지를 가르는 데이터 등도 보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후속 협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대표의 출마지조차 '수도권 험지' 어디라고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 '어디에 나가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당이 먼저 협의를 요청해와야 하는데, 전직 비상대책위원장의 자기희생적 결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노무현정권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맡으며 비서실장·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던 김 전 위원장은 위기감을 갈수록 크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선거법·공수처법 강행 처리 국면에서는 이례적으로 강한 언사를 동원해 통렬한 비판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측 관계자는 "문재인정권에 의회권력까지 내줘 남은 2년 무소불위의 칼을 쥐어준다는 것은 역사 앞에서의 범죄행위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다"며 "어렵더라도 저격해야할 상징적인 인사가 있다면, 유혈이 낭자하게 싸우다 죽어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위원장의 고심 깊은 침묵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경각에 달린 과제인 △한국당의 중도외연 확장 △보수대통합이 완전히 난망해지고 있다고 여겨질 때까지는 지도부 비판은 자제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는 관측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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