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천만, 디즈니 제국이 선포됐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07.15 08:15
수정 2019.07.15 08:14

<하재근의 이슈분석> 막대한 지적 자산으로 놀라운 제작능력과 자본력 활용

<하재근의 이슈분석> 막대한 지적 자산으로 놀라운 제작능력과 자본력 활용

ⓒ알라딘 포토티켓 이미지

설마설마했던 ‘알라딘’의 천만 돌파가 마침내 현실화됐다. 보통 천만 영화들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개봉하자마자 흥행폭주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알라딘’은 우려와 무관심 속에 개봉해 첫날 관객이 7만 2736명에 불과할 정도로 호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놀라운 흥행 뒷심을 발휘하더니 역대 7번째 천만 외화에 등극하고 말았다. 정말 이례적인 대이변극이다. 개봉 첫날 관객이 10만 명 미만인 영화 중에 천만 영화가 된 최초 기록이다.

일단 대진운이 좋았다. ‘기생충’이 흥행하긴 했지만 오락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알라딘’의 경쟁자는 아니었고, ‘알라딘’을 위협할 만한 오락영화가 딱히 없었다. 한국 영화 기대작들은 폭망하는 분위기였고, 심지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엑스맨 : 다크 피닉스’,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마저 놀랍도록 저조한 흥행실적으로 퇴장했다. 이래서 ‘알라딘’ 강제 독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요즘 흥겨운 뮤지컬 영화를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는 것도 흥행 폭주에 영향을 미쳤다. 원래 한국 관객은 뮤지컬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었는데 2010년대부터 뮤지컬 영화 선호도가 대단히 높아졌다. 2000년대에 공연계에 뮤지컬 열풍이 불면서 뮤지컬에 친숙해진 관객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국인이 흥이 많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가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거에 뮤지컬에 무관심했던 것이 특이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 뮤지컬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한국인에게 원래 내재돼있던 특성이 이제야 영화 흥행에 반영되는 측면이 있다.

가벼운 오락물을 원하는 심리도 작용했다. 한때 무거운 시대극, 사회부조리를 다룬 작품들이 크게 흥행했었는데 ‘극한직업’ 이후부터 가벼운 오락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알라딘’은 극적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흥겨운 음악과 화려한 영상이 어우러진 오락물이어서 관객에게 어필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기억이 있는데 어설프게 실사화했다간 실망감만 커졌을 것이다. ‘알라딘’은 놀라운 특수효과 기술로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혹평 받은 캐스팅인 윌스미스의 지니가 이제 와선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찬사를 듣는 것도, 특수효과로 형상화를 잘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역할에 윌스미스를 캐스팅하고 한국 영화계가 한국 영화로 만들었다면 절대로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찬사가 안 나왔을 것이다. 우리 영화계는 꿈도 못 꾸는 디즈니의 제작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무서운 것은 디즈니에게 엄청난 지적 자산들이 있다는 점이다. 과거 히트 애니메이션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놀라운 실사 제작능력을 갖췄다면 앞으로 실사화 히트 행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천만 돌파에서도 디즈니 지적 자산의 위력이 드러났다. 과거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가진 40대가 아이들과 함께 관람에 나선 것이 흥행 뒷심에 힘을 보탠 것이다. 디즈니는 이렇게 수많은 지적 자산을 활용해 그때그때 제작기술의 발전에 따른 신 버전을 만들어 돈을 쓸어 담는다.

디즈니 지적 자산의 위력은 디지털 영상 서비스(OTT)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넷플릭스에 대적할 디즈니의 영상 서비스가 11월에 개시되는데, 거기에서 디즈니의 영화나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20세기 폭스의 ‘엑스맨’ 시리즈, 픽사의 ‘토이스토리’ 시리즈, 루카스 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서비스한다. 영상 플랫폼업계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는 원작을 활용하되 그것을 무조건 지키려 하지 않는다. 시대변화에 따라 스토리도 변형시키는 것이다. 이번 ‘알라딘’도 여성주의 열풍에 맞춰서 알라딘보다 자스민 공주를 더 부각시켰다. 자스민 공주가 부를 노래까지 새로 만들어 선보였는데, 이 곡이 나올 때 전율했다는 관객이 많다. 이렇게 해서 극장의 주 관객인 여성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막대한 지적 자산으로 놀라운 제작능력과 자본력을 활용해 신작을 만들어내고, 시대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관객을 사로잡으며, 자사의 독점적인 플랫폼까지 만드는 디즈니. 가히 디즈니 제국이다. ‘알라딘’ 천만 흥행이 디즈니 제국 출범을 알리는 선포식 같은 느낌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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