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당신이 알고 있던 송강호는 잊어라 '마약왕'

부수정 기자
입력 2018.12.16 08:00
수정 2018.12.16 09:40

송강호·조정석·배두나 주연

김소진·이희준·조우진 가세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은 1970년대 근본도 없는 한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쇼박스

영화 '마약왕' 리뷰
송강호·조정석·배두나 주연


'마약'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흥미롭고 다이나믹하게 그려낸 영화가 있을까.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은 제목부터 마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마약'은 부정적이고, 무겁다. 흔히 마약을 내세운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이야기, 전개 방식이 있다. 우 감독의 손을 거친 '마약왕'은 관객들의 예상을 깨고 메시지와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

독재 정권이던 1970년대 대한민국, 부산에 사는 이두삼(송강호)은 평범한 가장이자 하급 밀수업자다. 딸린 식구만 여럿인 그가 이 나라에서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한 그는 마약 제조와 유통 사업에 눈을 뜨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다. 이후 뛰어난 눈썰미, 빠른 위기대처능력, 신이 내린 손재주로 단숨에 마약업을 장악한다. 마약은 빠지면 빠져들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범죄이지만 이두삼에겐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부를 이용해 정·재계 등 권력에 다가가던 그는 한 모임에서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를 만나고,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달고 마약을 팔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두삼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백색 황금시대를 연다.

승승장구하는 이두삼을 주시하는 김인구 검사(조정석)는 이두삼을 쫓기 시작하고, 이두삼은 마약 범죄에 빠질수록 되돌릴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며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은 1970년대 근본도 없는 한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쇼박스

'마약왕'은 1970년대 근본도 없는 한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내부자들'과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로 9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청소년관람 불가(청불)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쓴 우민호 감독 신작이다.

제작진은 '내부자들'이 개봉하던 시점부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돌입해 사전 조사와 자료 수집을 진행했다. 1년 가까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실제 마약 제조 경력이 있는 사람들, 치료를 마친 마약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묘사가 꽤 구체적이다. 제작진이 영화를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약왕'의 미덕은 이야기에 있다. '마약'을 전면에 내세운 터라 범죄물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는 '마약왕' 이두삼이 소시민에서 마약왕이 되고 몰락하기까지 '흥망성쇠'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봤다.

무거운 소재를 마냥 무겁게 그리지 않는 우 감독의 솜씨가 뛰어나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깨알 웃음을 잃지 않고, 배우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온다. 감독과 배우들의 합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우 감독은 "1970년대 마약 밀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꽤 흥미로웠다"며 "아이러니한 당시 상황을 블랙 코미디 화법으로 풀었다. 당시를 살았던 소시민이 마약왕이 되고 이후 몰락하는 과정을 변화무쌍하게 담는 과정을 가장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표현 수위와 관련해선 "마약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청불'이라고 생각했다"며 "관람 등급에 상관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장면을 찍었다"고 전했다.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은 1970년대 근본도 없는 한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쇼박스

영화의 9할은 송강호가 담당했다. 그간 소시민적인 모습을 주로 선보인 그는 평범한 이두삼이 마약에 빠져 변화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액션, 환각, 복합적인 감정 등도 송강호의 숙제였다.

고문실에서 거꾸로 매달려 맞다가 한쪽 눈을 뜨는 연기를 보노라면 감탄이 나온다. 왜 이두삼이 마약왕이 될 수밖에 없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후반부 이두삼이 마약에 찌들어 미쳐가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송강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송강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송강호는 "이두삼은 지금까지 내가 연기했던 인물들과 많이 달랐다"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배우로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이어 "마약에 중독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상상하고, 많이 연구하는 점이 어려웠다"면서 "연기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고, 외롭다. 하지만 주변인들 덕에 견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시지에 대해선 "사회악인 마약은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며 "이런 사회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부분을 엔딩에 담았다"고 전했다.

송강호와 엮이는 캐릭터들도 극에 활력을 더한다. 이두삼을 쫓는 김인구 검사 역의 조정석, 이두삼의 아내 성숙경을 연기한 김소진, 로비스트 김정아 역의 배두나, 이두삼 사촌 동생 이두환 역의 김대명 등 모두 제 몫을 다하며 송강호를 도왔다.

12월 19일 개봉. 139분. 청소년관람불가.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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