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고 기다리면 만점 준다" 전국으로 번지는 스쿨미투

이선민 기자
입력 2018.09.16 01:00
수정 2018.09.16 07:18

용기 낸 학생들, SNS 해시태그 이용해 공론화 시도

서울, 인천,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교사의 성희롱 실태를 폭로하며 ‘스쿨미투’를 외치는 가운데 교육당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연합뉴스

용기 낸 학생들, SNS 해시태그 이용해 공론화 시도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교사의 성희롱 실태를 폭로하며 ‘스쿨미투’를 외치는 가운데 교육당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교에 붙은 포스트잇으로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사안이 알려졌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 학교의 A 교사는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여자는 아테네처럼 강하고 헤라처럼 질투 많은 것은 별로고 아프로디테처럼 예쁘고 쭉쭉빵빵해야 한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성동 광진 교육지원청은 이 같은 내용이 공론화되자 해당 학교에 대한 특별장학에 착수했으며 경찰도 내사에 들어갔다.

지난달에는 서울의 한 여고에서 졸업생 96명이 교사 18명을 상대로 성희롱·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무더기 파면·해임·정직 징계가 내려지는 일도 있었다.

인천시 부평구의 중학교 한 곳과 계양구의 중학교 한 곳에서도 여학생들이 교사와 남학생으로부터 성차별 발언과 성추행 등을 당했다는 신고가 있었다.

부평구에 위치한 중학교 학생들은 SNS를 통해 “선생님이 학생에게 ‘이렇게 춥게 입고 다니니 나중에 임신 못 하겠다’는 말을 했고 선생님이 체육 시간에 은근슬쩍 학생들 허벅지를 만지거나 몇몇 학생만 따로 불러 일을 시켰다”고 폭로했다.

계양구의 중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몇 달 전 3학년 남학생이 여학생들을 불법 촬영한 뒤 합성·유포했지만 선생님들은 부모님께 말하지 말라며 입막음하려 했다”며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서 가해 학생과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 친구로 지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천시 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트위터를 비롯해 SNS에 올라온 여러 미투 글들이 사실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경위서를 받고 있다”며 “사실 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진 뒤 어떤 조치를 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광주의 한 중학교 학생들은 SNS를 통해 이 학교 교사 2명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자는 애 낳는 기계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즉시 해당 교사들을 수업에서 배제할 것을 학교 측에 요청했고, 학교 측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받아 사실 관계 조사에 나섰다.

대전 지역에는 ‘대전 A여고 공론화 제보정리’라는 페이지가 생성됐다. 이 페이지에는 교사 B 씨가 “둔산동을 지나다니다 보면 여자들을 성폭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야기 했으며 또 다른 교사 C 씨는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A여고는 지난 10일 이 페이지에 언급된 교사 2명을 수업에서 배제하고, 관련 교사 12명이 전교생을 상대로 사과했다. 대전시교육청은 이와 관련한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정부와 청소년 관련 세 부처는 학생들의 SOS에 응답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14일 오후 4800여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 서명을 했다.

청원에 따르면 올 9월 19개의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터져나왔다. 경화여자중학교, 계양중학교, 광남중학교,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 대명여자고등학교, 대원여자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마산J여자고등학교, 부산문화여자고등학교, 부산S여자중학교, 부원여자중학교, 서대전여자고등학교, 소선여자중학교, 용인대덕중학교, 죽전고등학교,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충북여자고등학교, 충북여자중학교, 혜화여자고등학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청원자는 “누구나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이 나라의 한 국민으로써 이러한 학생들의 고통과 절박함을 통감하며 청원글을 올린다”며 ▲교육자의 성범죄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 모든 교육자의 성평등강의 의무 이수제 ▲스쿨미투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와 교육관련 재취업 금지와 교원자격 영구박탈 ▲교육부의 정기 전체 사립·공립학교 동시 성범죄 감사 ▲경찰의 스쿨미투 공식수사 등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학생들의 인권감수성이 올라간 만큼 교사들이 구시대적 언행을 한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될 문제라고 보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담교사 김모 씨는 “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선생님들의 행동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투가 터지고, 경찰과 교육 당국이 적절한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마음이 치유되기도 하지만, SNS에서 자신의 피해 내용을 증언하고, 다른 학생들의 적나라한 피해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강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피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치료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선민 기자 (yeats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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