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김남길 "운명 같은 만남 믿어요"
부수정 기자
입력 2017.04.04 07:00
수정 2017.04.05 09:16
입력 2017.04.04 07:00
수정 2017.04.05 09:16
영화 '어느날'서 상처 있는 남자 강수 역
천우희와 감성 멜로…"힘 많이 뺐다"
영화 '어느날'서 상처 있는 남자 강수 역
천우희와 감성 멜로…"힘 많이 뺐다"
"운명, 인연을 믿어요. 진짜 둘이 만날 운명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만날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인연이라면 어쩔 수 없고요."
감성 멜로 '어느날'(감독 이윤기)로 돌아온 김남길에게 '운명을 믿냐'고 물었더니 이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어느날'은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된 남자 강수(김남길)와 뜻밖의 사고로 영혼이 돼 세상을 처음 보게 된 여자 미소(천우희)가 서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남과 여'(2016), '멋진 하루'(2008), '여자 정혜'(2005) 등을 만든 이윤기 감독의 신작이다.
인간과 영혼의 운명적 만남을 담은 이 영화는 상처받은 두 사람을 어루만지며 치유한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기 힘든 요즘, 영화 속 강수와 미소는 운명처럼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아울러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어 상처, 외로움, 아픔 등을 공유한다.
김남길은 극 중 아내와 사별한 후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강수 역을 맡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김남길을 만났다.
'무뢰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선덕여왕', '나쁜 남자', '상어' 등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는 감성 멜로에서 힘을 많이 뺀 연기를 선보였다. '나쁜남자'는 온데간데없고 마냥 어루만져주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앞서 김남길은 출연을 한 차례 고사했다. 그러다 다시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 무엇이 그를 '어느날'로 이끌었을까. "무거운 소재를 밝게 이끈 이야기에 끌렸어요. 사실 처음엔 강수가 가진 상처와 아픔에 공감 못 했죠. 제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니까. 근데 몇 개월 후 다시 시나리오를 보니 강수가 안쓰럽더라고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짠했어요."
김남길은 연기할 때마다 매번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전 작품보다 수월할 듯한 작품이라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힘들단다. 이번 '어느날'도 그랬다. 상상한 감정선의 기대치를 표현해야만 하는 압박을 받았다. 그래도 결과물을 보니 판타지 감성 멜로가 잘 담긴 것 같아 만족한다고 배우는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산다"며 "'어느날'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았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천우희와는 남매 같은 케미스트리(배우 간 호흡)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호흡이 일품이다. '어느날'에서 보여주는 두 남녀의 관계는 멜로라기보다는 서로 치유하는 상대에 가깝다. "이야기가 흐트러질까 봐 최대한 멜로처럼 보이지 않게 신경 썼어요. 알콩달콩한 사랑보다는 일상적인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스킨십할 때도 조심했고."
그래도 잘생긴 김남길과 예쁜 천우희는 나란히 걷는 장면만으로 충분히 설레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는 장면, 서로의 볼을 쓰다듬는 장면 등이 가슴에 '콕' 박힌다.
상대 역 천우희에 대해선 '여자 김남길'이라고 칭했다. 첫 만남에서부터 둘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왔다. 김남길은 "천우희는 털털하고, 센스 있고 바르다"며 "자기가 돋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영화 전체를 볼 줄 아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마지막 미소를 통해 아내(임화영)를 만났을 때 강수는 켜켜이 쌓인 아픔과 상처를 터트리며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널 잊겠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바닷가, 노을 등 배경과 잘 어울리며 아름다운 감성을 만들어냈다. 현장에 있던 김남길의 소감이 궁금해졌다. "처음엔 눈물, 콧물 흘리면서 더 처절하게 찍었답니다. 미소와 떠난 아내가 연이어 나오는 장면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기했습니다. "
김남길이 꼽은 명장면은 극 말미 강수가 아내와의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는 부분이다. 소소한 일상을 떠올리는 강수는 참았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구나 지치고 힘들어요. 강수도 마찬가지죠. 더군다나 아내와 사별했잖아요. 아내가 그렇게 떠난 게 자기 탓인 것 같아 힘들어하던 강수에게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이젠 좀 행복해'라고. 강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이 감독은 '어느날'에 대해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김남길도 동의했다. "강수는 영혼을 통해서라고 먼저 떠난 아내를 간절하게 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러다 미소의 아픔을 알게 되고, 그 아픔에 스며들게 됩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이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게 된 거죠."
살면서 지치고 힘들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좌절을 딛고 잃어서는 한편, 또 어떤 사람은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매일 걷는다. 김남길에게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고, 연기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 정신, 건강 모두 잃으니 연기하는 게 두려웠단다.
"예전엔 연기하는 자체가 재밌었는데 '해적' 했을 땐 연기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무뢰한' 찍고 나아졌는데 이후 1년 공백기 동안 몸이 아팠죠. 과호흡이 와서 숨을 잘 못 쉬었어고, 메니에르병(귓병의 하나로 심한 어지럼증·난청 등의 증상을 보임)에도 시달렸어요. 정말 힘들었죠."
순간 김남길의 얼굴에 강수가 겹쳐 보였다. 배우는 말을 이어갔다.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인데도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은 순간이 와요. 솔직히 일확천금이 있으면 연기를 쉬고 싶어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거든요. 여행도 다니면서 편하게, 있는 그대로."
'어느날'을 보면 삶과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난 언제 가장 행복한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살펴 보면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한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이에 대해 김남길은 "행복을 광고하듯 보여주려고 한다"며 "SNS를 보면 빈껍데기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선 "나는 긍정적이라 잘 극복하는데 힘들어지는 주기가 짧아진다"며 "심리 상담을 받기도 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자기 상처와 아픔을 얘기하는 게 힘들잖아요. '어느날'을 통해 스스로 돌아보고 사랑했으면 합니다. 지금 이 힘든 상황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도요. 누구나 다 아픔이 있잖아요. 서로 용기 내서 밝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김남길은 한 감독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만 영화가 무조건 좋은 영화는 아니다. 의미 있고, 좋은 영화를 천만 영화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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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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