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안고 경선 나서는 단체장들…행정공백·주민피해 불가피

이슬기 기자
입력 2016.12.20 18:35
수정 2016.12.21 08:36

안희정,이재명 등 줄줄이 예고…김문수 선례 때 야당 반발

“대선 욕심에 도정까지 손에 쥐고 있겠다는 심보 아닌가”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17 국민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통합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조기대선 가능성이 부쩍 높아진 가운데, 야권 대선 주자 중 현직 자치단체장들의 출마 채비도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특히 현 정국 상황상 대선 및 재·보궐선거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현직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공식 선언을 한 건 ‘노무현의 적자’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지사는 지난 19일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송년 기자회견을 열고,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안 지사는 “도정 공백에 대한 걱정이 있지만 저의 도전은 도정발전의 큰 동력이 될 것이라 분명히 말하고 싶다”며 “경선 때까지 도지사직 유지는 법률상 보장된 길이다. 그 길 안에서 도정 공백이 없도록 하면서 경선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시도지사직을 갖고 있어도 당헌·당규상 당내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위는 최근 대통령 궐위 상황에 의한 보궐선거 시 자치단체장은 당초 규정대로 선거 90일전이 아닌, 30일 전까지만 사퇴하면 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정상적인 일정이라면 현직 단체장은 대선 전 90일 전에 사퇴해야 하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출마가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또 각 당 대선후보 등록은 선거 23일 전까지 마치도록 할 계획이라고 규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일찍이 ‘시장직 유지’ 기조를 밝혀왔다. 이 시장 측 관계자는 “성남시장 직은 시민과의 약속이어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 처음부터 계속 이야기해온 내용”이라며 “두 가지를 병행하면 시간이 부족하긴 하겠지만, SNS가 워낙 발달돼있어서 광범위하게 국민들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시정은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원순 서울시장 측도 “당연히 서울시장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여권에서는 자치단체장직을 유지하면서 대선 경선을 치르면 시·도정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지난 대선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 “당내 경선에 전념하겠다”며 경기지사 중도사퇴를 시사했다. 하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시장직 중도사퇴로 서울시가 야당에 넘어가자 새누리당 내 반대 기류가 강해졌고, 결국 입장을 번복해 지사직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을 완주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지사직을 사퇴하지 않고 경선을 치른 김 지사의 전례가 야권 잠룡들에게도 동일한 ‘길’을 열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의 격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입장이 워낙 강경했고, 김 지사도 결국 경선 결과에 따라 도지사직 사퇴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야권과 경기도의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대선 욕심에 도정까지 손에 쥐고 있겠다는 심보 아닌가”라며 “대선에 나가려면 먼저 지사직을 그만두는 게 도리”라고 김 지사의 사퇴를 강하게 촉구했다. 이러한 비난은 지역 차원에서도 이어진 바 있다. 경실련 경기도협의회는 당시 성명을 내고 “경선 결과에 따라 도지사직 사퇴여부를 결정한다면,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정상적인 경기도정에는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대선 주자들 측에선 대선과 재보선이 함께 치러진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일정이 전혀 나오지 않은 만큼, 당장 시도지사직을 그만두는 것은 더 큰 공백을 야기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 지사 측은 “도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이 도정 공백이 생기니 나가라고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무책임하다”며 “지금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경선을 준비하면 부족한 부분은 정무부지사가 도와줄 수 있는데, 지금 직을 던지면 더 큰 도정 공백이 온다. 지사가 빠지는 순간 새로운 누군가가 바로 들어와서 공백을 채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 시장 측 관계자도 “무조건 전국을 다니면서 유권자를 만나는 것만이 경선 준비의 전부는 아니다. 후보의 비전과 얼굴을 알리는 것은 SNS로도 기회가 충분하다”며 “다른 지역 시장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남시민도 포함된 대한민국을 경영해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도 환영하고 격려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정치적 책임’ 측면에서 현직 시도지사직을 사퇴한 뒤 경선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실제로 경선에 돌입하면 선거 운동을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도정을 제대로 돌볼 수 있겠느냐.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물론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문제가 생기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직을 그만두면 부지사가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데, 현직 상태로 경선을 치르면 부지사가 경선 중인 지사를 쫓아다니면서 결재를 받아야한다”며 “부지사가 제대로 전면에 나서기도, 안 나서기도 애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더 큰 공백’을 막기 위해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잠룡들의 주장에 대해선 “어느 쪽도 잃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시민과 도민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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