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는 국민들을 위해 묵묵히 NLL을 붙들고 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6.04.09 22:49
수정 2016.04.10 08:41

<영화 '연평해전' 원작자 '영웅들의 섬' 연평도를 가다>

우리가 외면한 연평해전, 그러나 우리를 외면 안한 연평도

서해수호의 날(3월 25일)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방한계선(NLL)이 있는 서해 바다에서 북한의 도발에 맞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올해부터 처음 지정된 기념일입니다. '데일리안'은 최순조 작가(영화 연평해전의 원작자)와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동안 연평도 동행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최순조 작가는 영화 '연평해전' 개봉이후 처음으로 다시 연평도를 방문했는데 그의 소회를 담은 연평도 기행문을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

지난 2002년 6월 북한 함정의 NLL도발로 전사한 참수리 357정 승조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데일리안

지난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위령탑.ⓒ데일리안

서해 북단에는 교동도에서 시작하여 해주 앞바다와 옹진반도를 거쳐 장산곶 코앞까지 횡으로 길게 늘어선 섬 다섯 개가 있다. 바로 우도를 시작으로 연평도와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로 이어진 서해5도이다. 서해5도는 NLL이라는 무형의 띠를 두르고서 김정은의 졸개들이 우리의 수도권을 넘보지 못하도록 독수리 오형제처럼 꿋꿋이 버티는 고마운 섬이다.

필자는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서해5도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연평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막상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자니 여행에 대한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부쩍 긴장 되었다.

여객선에 몸을 싣고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서해의 수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간기가 끈끈히 배인 바닷바람과 너울거리는 파도를 헤치며 서북쪽으로 83㎞를 항해한 끝에, 마치 넓은 마당에 버려진 짚신 한 짝처럼 덩그러니 놓인 섬을 만났다. 면적 7.0㎢, 해안선 길이 16.6㎞의 연평도와 해후한 셈이었다.

필자는 10년이 넘는 해군생활 가운데 연평도와 연애를 했던 때가 있었다. 연평도 해군 고속정전진기지에서 근무할 때는 가슴에 덕지덕지 발리는 해풍 때문에 힘이 들었어도, 내 뒤에 있는 국민이 긍지심을 일깨워주어 용기가 났다. 그러한 까닭에 국토를 방위한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내 심장이 반짝반짝 윤이 날 수 있었던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여섯 명의 용사는 당시의 정부와 국민이 마치 뜻을 합친 것처럼 더불어 앙앙불락 외면했다. 그때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꾼들이 정치놀음으로 효선이와 미순이는 떠받들면서도, 나라를 지켜내다 전사한 윤영하,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박동혁은 서해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힌 권횡을 저지른 탓이었다.

연평도를 떠난 뒤 미국에서 살면서도 해군과 연평도에 대한 애틋한 여운이 늘 남아 있던 필자는 여섯 후배들의 죽음을 결코 도외시할 수 없었다. 궁리 끝에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제2연평해전 사건을 파헤쳤다. 소설 연평해전은 그렇게 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날의 감회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당섬부두에 내려서자 개펄이 퍼트리는 비릿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 밀려든다. 바닷물에 유입된 흙과 유기물이 썩으면서 생긴 찌꺼기 해감…, 바다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냄새가 해감이다. 한때 필자가 콧구멍에 꿰차고 살았던 냄새였는데, 어쩐 일인지 반갑지가 않고 되레 가슴을 탁 누른다.

연평도를 방문한 뭍사람들 틈에 덧묻어 당섬부두를 떠났다. 몇 걸음 가다가 당섬부두 입구에 세워진 제1연평해전 전승비와 마주쳤다. 문득 1차, 2차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뇌리에 떠오르면서 덩달아 분단된 민족의 아픔이 옴지락옴지락 꾸물거렸다. 그러자 비로소 가슴을 눌렀던 그 정체를 알았다. 그만 코끝이 찡하게 시어 오면서 가슴에서 주먹 같은 덩어리가 뭉쳐졌다. 잠시 동안 제1연평해전 전승비 앞에서 서성이다가 연도교(連島橋)로 발걸음을 뗐다.

연평도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동북쪽에 있는 망향공원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북한 땅 강령반도에 옹긋쫑긋 늘어선 작은 섬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잘싸닥대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갑도에는 122㎜ 방사포와 인민군 포병 100명가량이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연평도에서 4.5㎞ 떨어진 갑도는 그나마 먼 편에 속한다. 불과 1㎞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우리 해병의 초소를 노려보는 석도는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산란을 앞두고서 물속에서 꼬리치는 물고기처럼 오락가락하는 바닷바람은 NLL 위로 벽파(碧波)를 훌뿌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석도 뒤로 숨은 갑도와 장재도 근처에는 북한의 가호를 입은 중국어선들이 마치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처럼 즐비했다.

연평도는 한때 조기들의 놀이터였고 꽃게들의 놀이방이었다. 그랬던 섬이었는데 조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나마 제주 남쪽의 바다로 이동했다가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3월쯤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오는 꽃게마저도 예전 같지가 않다. 게다가 해마다 꽃게철만 되면 북한의 갑도, 석도, 장제도 사이에서 대기 중인 중국어선 수백 척이 NLL을 침범하여 꽃게를 싹쓸이 해가니 연평도 어민들은 울상이다.

지난 달 28일에 연평도의 꽃게잡이 어선 34척 중 30척이 올 들어 첫 꽃게잡이를 위해 출항했다. 이 어선들은 삶의 터전인 801㎢ 규모의 연평어장을 6월 30일까지 누비며 꽃게잡이를 할 것이다. 하지만 싹쓸이전문 중국어선 때문에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 값도 못 건질 판이란다.

연평도를 떠나기에 앞서 연평도 서쪽의 평화공원에 들렀다.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여섯 명의 해군용사와 연평도 포격 도발로 산화한 두 명의 해병용사 얼굴이 부조되어 있다. 살신성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한 용사들에게 헌화하고 묵념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갯바위에 달라붙은 굴 껍데기처럼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괴괴한 달밤처럼 적막한 눈으로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가 발걸음을 조기역사관으로 옮겼다.

사방이 탁 트인 높은 누각에 올라서자 까마득히 먼 곳에 연평도에서 출항한 어선들이 웅게웅게 모여 조업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선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햇볕을 받아 조용하게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 위로 오가며 어선을 보호하는 든든한 해군 고속정도 보인다.

잠시 넋을 놓고 망연히 서 있다가 뒤늦게 배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고는 급히 당섬부두로 달려가 겨우 여객선을 탔다. 막상 여객선이 출항하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후갑판에 홀로 서서 연평도를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연평도를 우두커니 쳐다보노라니 느닷없이 아이 서넛 딸린 홀아비를 남겨두고 떠나는 난감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어린 자식들 때문에 주위에서 권하는 혼처자리를 다 물리치고 여일하게 늙어 가는 홀아비의 희생…. 연평도는 우리의 수도권을 지켜내기 위해 NLL을 붙잡고서 묵묵히 앙버티며 우리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있었다.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연평도가 기특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최순조 작가·영화 '연평해전' 원작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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