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예산마저...아이들 볼모로 거래하려는 지방의회
하윤아 기자
입력 2016.01.12 08:54
수정 2016.01.12 09:46
입력 2016.01.12 08:54
수정 2016.01.12 09:46
<누리과정 긴급좌담회>"유치원 과정 예산 있으면서 미편성"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편성 결정하겠다는 의도"
어린이집은 물론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전액 삭감한 서울·광주·전남·경기 등 4곳의 시도의회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정치적 의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육대란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절정에 다다른 상황임에도 불구, 학부모와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 사회실장은 8일 데일리안과 바른사회가 공동주최한 ‘누리과정 긴급좌담회’에서 “4곳의 시도의회는 지금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있으면서도 내부유보금으로 묶어놓고 있다”며 “유보금은 다시 한 번 시도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쓸 수 있다. 즉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편성을 결정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실장에 따르면 서울과 광주, 전남, 경기(예산안 통과가 이뤄지지 않은 경기도의 경우는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통과 기준) 등 4곳의 시도의회는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해당 예산을 예비비의 내부유보금 항목으로 편성했다.
서울의 경우는 유치원 누리과정 삭감예산 전액(2521억)을 유보금으로 돌렸고, 광주와 전남 역시 마찬가지로 유치원 누리과정 삭감예산 각각 598억과 483억을 유보금으로 편성했다. 예산안 본회의 통과가 불발된 경기의 경우에는 앞서 4929억의 유치원 누리과정 삭감예산을 유보금으로 책정한 예산안이 의회 예결위를 통과한 바 있다.
만약 이 유보금이 누리과정 몫으로 사용되려면 각 시도의회가 임시회를 열어 추가경정 예산안을 상정하고 이에 대해 동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회가 추경예산 편성마저도 거부할 경우에는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특히 그는 “현재까지 공개된 서울시의회 예결특위 회의록을 보면 일부 몇몇 위원들만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침묵하고 있다”며 “논의 자체도 당장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학부모나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식으로만 이뤄지고 있고, 더 큰 문제는 무작정 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여당 쪽 의원들은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실장은 “주민들에게 선택받아 선출된 사람들이 본인 지역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겪을 혼란에 대해 진정 고민은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며 “이런 상황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보육시설”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실제 당장 이달 말부터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사태로 인한 보육대란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에는 매달 20~25일 교육청으로부터 지원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10여일 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치원비는 학부모들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당장 이달부터 어린이집 원생 1명당 7만원 씩 지원했던 누리과정 운영비(보육교사 수당, 보조교사 인건비, 교구비 등 지원비)가 미지급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각 지자체가 도교육청으로부터 누리과정 운영비 예산을 받아 개별 시·군으로 내려 보내는데, 현재 6곳(서울, 광주, 세종, 강원, 전남, 전북)의 지자체 지방의회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당장 이달분부터 운영비가 끊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당장 한두 달 안에 보육대란을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사법적으로 교육청을 압박하고만 있다”며 “사법적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하면 시간이 또 1~2년 걸릴 텐데, 당장의 피해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현 정부의 누리과정 문제 대응을 꼬집었다.
장 회장은 “우선 1~2월 예상되는 보육대란을 해소할 수 있는 일시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도 “누리과정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의 국가규모에 맞는, 국가 경제력에 맞는 복지의 틀을 새로 짜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가 됐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차제에 무상보육 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사무국장은 “국가가 누리과정으로 교육의 틀을 정해두니 오히려 특별활동에 치중하게 되고, 실제 유치원에서도 국가가 짜놓은 교육과정 외에 차별성 있는 다른 것을 보여주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누리과정이 있더라도 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에는 차이가 없는 것”이라며 “무상교육을 했을 때 과연 교육의 질이 높아졌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 실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상보육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이 마련돼 중앙정부와 지자체(지방의회)가 불필요한 복지 다툼을 벌일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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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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