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은 명성황후와 박 대통령에 정중히 사과해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5.10.02 11:03
수정 2015.10.02 15:56
입력 2015.10.02 11:03
수정 2015.10.02 15:56
<특별기고>명성황후 시해 120주기...세기 넘어 만행과 망발
이는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이 괵국을 친다는 명분으로 우국의 길을 빌려 괵국을 멸망시킨 후 돌아오는 길에 우국까지 멸망시켰던 '가도멸괵'의 고사를 흉내내 조선을 병탄하려 했던 교활한 속임수였는데, 저들은 이것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뻔뻔한 것인가?
경술년(1910년)에는 한국을 강제 병탄하여 쌀을 비롯한 무수한 광물자원 수탈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자유 수호를 위해 피를 흘릴 때, 공짜 안보에 편승한 일본이 군수물자 수출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이로써 전후부흥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온 세계가 다 알거늘 어찌 가증스런 거짓말로 진실을 왜곡하려 하는가?
명성황후는 일찍이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며 여러 주변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쇄국정책을 고집하는 대원군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2006년 5월 초에 발견된 '임오유월일기(壬午六月日記)'에는 임오군란 때, 간신히 죽음을 면한 명성황후가 여기저기 낯선 시골을 떠돌며, 인후염과 종기, 학질 등의 병에 시달리고, 묵으려던 민가에서마저 거절을 당한 일 등 천신만고의 피난기가 기록되어 있다. 한 목숨 부지하기도 버거웠던 명성황후가 어느 겨를에 경성과 연락을 취하며, 정국을 주도하고 청군을 끌어들였단 말인가?
죽음의 위난을 겪고 간신히 왕궁에 돌아온 후 어떤 사람이 “군란을 일으킨 군사에 대해서는 모두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였을 때, “내가 덕이 없고 또한 운수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찌 그 무리들이 한 짓이겠는가?”라고 하며 용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친정아버지의 묘를 옮길 때에 궁중 지관이 아뢰기를, “아무 곳에 좋은 묘 자리가 있는데 남의 무덤을 옮겨야 합니다”라고 말하니, “어버이를 위하는 마음은 상하가 같은데 어찌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남을 해하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명성황후를 네 번이나 알현했던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하여 “왕비전하께서는 어년이 40세 남짓한 호리호리 하옵신 우아한 미인이시다.…… 왕비전하께서는 친절하신 태도로 말씀하시며, 그 말씀이 가경에 들어가게 되자 안색이 빛나고 일층 더 아름답게 보이었다”고 극찬하였는데, 당신네 일본에 명성황후와 같이 아름답고, 지적이며, 지혜롭고 어진 왕비가 있었는가?
명성황후로 인해 조선병탄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지 못하게 되자 을미년(1895년) 음력 8월 20일, 일왕은 흉적의 무리를 보내 남의 나라 국모를 잔혹하게 시해하고, 그 주검에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른 후 불태웠다.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을미의병이 일어나 여러 친일관리를 죽이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겪고 나자, 을미의병이 가라앉은 후에도 명성황후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수집해 폐기하고, 온갖 악의적 소문을 퍼뜨려 명성황후의 명예를 폄훼하였고, 이번에 산케이 신문에 실린 노구치의 글은 다시 한 번 그 분의 명예를 짓밟은 것이다.
120년이 흐른 지금 노구치 정치전문위원은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민비의 사대주의를 따라하고 있다”고 폄훼하였다.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선린외교를 강화해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가려는 것에 대하여 일본은 왜 이렇게도 무례하게 굴며 초조해하는가?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여 또 한 번의 전쟁특수를 누리고, 이를 빌미로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일본군이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할 때 비록 도조 히데키의 지휘를 받았다고 해도 이들은 도조의 군대가 아니라 일왕의 군대이듯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적도가 비록 미우라 고로의 지휘를 받았다고 하여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일왕의 졸개들이니 당시의 일왕이야말로 이들 적도의 수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일왕은, 자신의 증조부가 흉적들을 보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일에 대하여 정중한 예로써 깊이 사죄하고 그 기록을 한일 양국의 교과서에 기재하라. 산케이 신문도 남의 나라 국가원수를 협박한 오만 무례를 사죄하고 즉시 기사를 삭제하라.
글/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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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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