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요금소안에서 본 '변태' 운전자들 천태만상
목용재 기자 / 박진여 기자
입력 2015.08.08 10:15
수정 2015.08.08 10:17
입력 2015.08.08 10:15
수정 2015.08.08 10:17
휴가 시즌에 더 바쁜 수납원들에 온갖 진상 운전자들
"치마 입고 올려보이는 남성에다 동전 뿌리고 도망"
"13초 안에 뭐를 할 수 있냐고요? 13초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시간 안에 고객님들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13년째 근무하고 있는 원남희 씨(43). 지난 6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센터에서 ‘데일리안’과 만난 원 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운전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항상 웃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 씨의 설명이다.
원 씨를 비롯한 서울 톨게이트 요금소 수납원들은 매년 7월말에서 8월 중순까지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휴가시즌을 4.35㎡의 비좁은 요금소에 갇혀 일하지만 ‘서울의 관문’에서 고객들을 맞이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한여름을 난다. 서울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근무하는 수납원들은 해변에서의 여름휴가를 꿈꾸지만 휴가철 여행객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요금소를 지킨다. 그들에게 ‘여름휴가’와 ‘명절’이라는 단어는 없다.
요금소 수납원들이 운전자들과 마주치고 통행료를 받는 시간은 대략 9~13초. 전자카드로 통행료를 결제하는 운전자들의 경우 수납원과 6초 정도를 대면한다. 이 찰나의 시간, 요금소 수납원들은 운전자들이 즐거운 여행길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쓴다.
"13초면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인데, 고객님들 기분 풀어드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해요. 톨게이트 영업소마다 고유번호가 있어서 통행증을 받으면 어디서 오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오신 분들한테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라고 한 말씀 드리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라면서 좋아하세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인데, 기분 좋게 들어가셔야 하잖아요."
운전자들에게는 13초의 짧은 만남이지만 요금소 수납원들에게는 반복되는 13초가 8시간으로 이어진다. 좁은 요금소에서 똑같은 인사말을 반복하며 8시간동안 앉아있는 그들에게는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사치다. 적정한 시간에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에 물을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다.
원 씨는 “처음 근무할 때 화장실 가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13년이 됐는데 조절이 가능하다”면서 “물을 마시면 3시간 후에 화장실을 가기 때문에 8시간 근무하면서 2번에서 3번 정도 화장실을 가는 것 같다. 근무하는 동안은 몸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근무 시작 전이나 쉬는 시간에 반드시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해결하고 근무에 임해야 하는데 이제 습관이 돼서 익숙하다”고 덧붙였다.
톨게이트 요금소 수납원들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운전자들을 맞이하려 하지만 종종 ‘꼴불견’들의 추태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동전 17개를 한 번에 뿌리고 통과하는 차량, 거스름 돈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욕설을 내뱉는 운전자, “톨비 좀 대신 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운전자 등 추태를 부리는 사례가 각양각색이다.
상의를 탈의한 운전자, 하의를 탈의하고 성기를 드러낸 채 수납원에게 통행료를 지불하는 운전자 등 간접적인 성추행도 당한다. 수납원들이 통행료를 받으려 운전석을 보면 남녀가 운전석에서 포개져 있거나 유사성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수납원들은 말조차 못할 정도로 당황해 낯이 붉어지기도 한다.
원남희 씨는 “‘나 좀 봐달라’는 식으로 통행권을 일부러 늦게 주는 운전자들이 있다. 일종의 ‘바바리맨’ 같은 운전자들이다”라면서 “남자 분인데 여자치마를 입고 와서 치마를 올리는 분도 있다. 나 스스로 베테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상황이 닥치면 몸이 얼고, 심장도 쿵쾅거린다”고 토로했다.
원 씨는 “동전을 뿌리고 가는 차량도 있다. 운전자가 동전을 뿌리고 지나가는데, 요금소 밖으로 나가 그 동전을 줍고 있으면 그렇게 비참할 때가 없다”면서 “어떤 고객은 200원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대신 내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꼴불견’ 고객만 있는 것도 아니다. “휴가철에 고생하시네요”, “휴가도 못 가시고 일하셔서 어떡해요” 등 운전자들의 간단한 격려 인사만 들어도 요금소 수납원들은 힘이 솟는다.
지난해 여름, 원 씨는 한 노부부에게 큰 감동을 느끼고 현재 자신의 직업에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됐다. 난생 처음 차를 몰고 서울 구경을 온 노부부에게 서울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자 1시간 후 다시 그 노부부가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와서 요금소에서 원 씨에게 건넨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톨게이트 같은 곳이 익숙지 않으셨던지 계속 길을 헤매는 노부부가 요금소로 들어오시길래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드렸죠. 1시간 정도 됐을까. 그 노부부의 차가 다시 요금소로 들어오길래 ‘왜 오셨느냐’라고 여쭸더니 ‘자네가 너무 고마워서 아이스크림 몇 개 사웠어’라고 하시더라구요. 수원까지 돌아가서 다시 제가 있는 요금소로 오신거예요. 이미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있었는데, 안 녹았더라도 그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겠어요. 그 노부부께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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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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