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엘리엇 막으려면? "의결권 5% 이상 높여라"

이홍석 기자
입력 2015.07.09 09:31
수정 2015.07.13 10:29

<해외투기자본 이대로 놔둘건가-하>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등 다양한 경영권방어 수단도입 시급

국회, 안정적 경영권 보장 위한 상법 개정 적극 나서야

주요 국가의 경영권 방어수단 종합 비교 ⓒ전국경제인연합회


[기획]삼성-엘리엇 사태로 본 해외투기자본의 국내기업 공습 실태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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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국기업, 벌쳐펀드 먹잇감 전락 왜?
(하)경영외풍 막으려면?-정책과 제도 개선 및 전문가 진단
[인터뷰]"국내 기업 환경에 맞는 경제민주화 재정립 필요"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경제가 회복을 위한 금융시장개방으로 해외 투자금이 지속적으로 국내에 유입됐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발판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그만큼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최근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투자기관은 총 198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해외기관은 총 285개 국내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들 중 ‘투자’에 가까운 재무적투자자(FI)가 많겠지만 이번에 삼성물산 공격에 나선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비중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안정적인 경영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자사주 취득이 유일하다. 자사주는 주로 회사 유보금으로 매입하게 되는데 이는 투자비용 감소와 배당 축소 등으로 기업과 주주의 손실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결국 기업들이 외국의 투기자본에 노출되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많은 비용과 자원을 쓸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서도 손해가 된다. 이에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과 같은 해외에서 검증된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등의결권 도입 자유로운 해외 … 국내는?=가장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주평등주의를 강조하며 회사법을 통해 1주당 1개의 의결권 원칙을 의무조항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직성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회사 주식을 장기 보유해 온 투자자와 외국계 헤지펀드가 동등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에 더 크게 노출돼 있는 것이다.
유럽의 국가별 1주 1의결권 적용 현황 ⓒ한국경제연구원

유럽의 경우, 1주1의결권을 적용하는 기업은 평균 65% 정도로 3분의 1 가량이 차등의결권을 적용한다. 특히 네덜란드(14%)·스웨덴(25%)·프랑스(31%) 등은 1주1의결권 비율이 낮을 정도로 차등의결권 적용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들은 지주회사격인 인베스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차등의결권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크누트-앨리스 발렌베리, 마리안-마르쿠스 발렌베리, 마르쿠스-아말리아 발렌베리 등 3개 재단이 가진 지분은 42.9%이지만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이 많아 의결권은 90%에 육박한다.

미국과 일본은 원칙적으로 1주1의결권 제도이지만 임의규정으로 회사가 정관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돼 있다.

구글의 경우, 지난 2004년 상장 시 1주당 1개의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인정되는 클래스 B주식을 발행했다.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페이지 등은 클래스 B주식을 다량 보유하는 방식으로 21.5%에 불과한 지분율로 73.3%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지하고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제도 중 하나인 ‘테뉴어보팅'(Tenure voting)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장기 발전을 지지하는 투자자들에게 지분 보유 기간 동안 차등 의결권을 부여하자는 것으로 단기투기자본 세력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황금주 도입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황금주는 1주의 주식만 보유하고 있어도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주요 안건에 대한 의사결정 권리가 주어지는 특별주식으로 지배주주가 주요 사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 거부권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영국·프랑스·일본 등이 도입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엘리엇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이 미흡해 기업들이 상장을 기피하고 있다”며 “상장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복수의결권 주식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현황 ⓒ한국경제연구원

포이즌필 도입하면 재벌 특혜? …경영권 방어수단 적극 강구해야=포이즌필도 차등의결권제와 함께 최근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매수자가 등장할 경우 그를 제외한 모든 주주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얻을 수 있는 제도다. 적대적 매수자에게 마치 '독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미 미국·일본·프랑스 등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도입,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IMF이후 자본시장이 본격 개방되면서 포이즌필의 필요성이 일부에서 제기됐지만 '재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컸고 대기업 오너들의 특혜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반대론이 커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헤지펀드들의 투기적 행동주의는 더욱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어 한국형 포이즌필을 도입해야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전무는 "1990년대 후반 관련 규제 폐지로 기업인수합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확충해야 한다"면서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사업재편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투기자본의 경영권 간섭을 막기위해 상법 개정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엘리엇 사태와 같이 해외 투기 자본이 적은 지분으로 경영자들의 경영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 상법상 3%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주주제안권, 주주총회 소집 청구, 이사 해임 건의 등을 할 수 있는데 이를 5% 이상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자본시장법에 명시된 5% 보고 제도(상장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반드시 금융 당국에 신고)도 보다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안정적 경영권 보장 법안은 소홀=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개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국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회는 경영권 남용을 제한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하는 법안에는 다소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자본시장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 다수 법안이 계류 중이다.

모회사의 주주가 모회사 뿐 아니라 자회사 임원들의 불법·부정행위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이사 선임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는 대표적인 경영권 남용 방지 법안이다. 반면,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해서는 국회 논의가 전무한 상태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소수주주들의 보호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온 것도 외국계 투기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면서 "소주주주들의 보호를 위한 법제도와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하는 법제도가 균형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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