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TV 속에서 살아난 현영철, 김여정의 노림수는
동성혜 기자/목용재 기자
입력 2015.06.17 08:53
수정 2015.06.17 08:53
입력 2015.06.17 08:53
수정 2015.06.17 08:53
사라진지 10일만에 기록영화에 또 등장 유례없어
전문가들 "대남 교란작전" "국제적 이미지 고려"
지난 4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새 기록영화에서 사라졌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10여일 만에 다시 조선중앙TV에 등장해 그의 숙청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다. 대북 소식통들과 정보당국에서는 김정은이 국제적 이미지를 고려해 현영철의 처형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대한민국을 교란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의 발표 시점보다 다소 늦게 처형된 게 아니냐는 신중한 주장도 제기됐다. 물론 이러한 여러 가지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식 공포정치, 잔혹성에 대해서는 이구동성 한 목소리를 냈다.
4월 30일 고사포로 잔인하게 처형됐다는 5월 13일 국정원의 발표 이후 현영철은 숙청된 북한 고위간부들의 ‘흔적지우기’ 사례와는 다른 양상으로 한 달 가까이 기록영화에 등장했다. 5월 5일부터 11일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김정은 인민군대 사업(2015.3) 현지지도’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6일, 8일, 10일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라는 노래에서도 등장했다. 심지어 국정원 발표 이튿날인 14일에도 현영철의 모습이 북한 조선중앙TV에 나왔다.
그러다 6월 4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새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에서는 김정은과 마지막으로 활동한 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 행사가 통째로 지워진 것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북한 관련 전문가들은 현영철 숙청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해석이 높았다.
하지만 불과 10여일 만인 15일과 16일 연이어 현영철은 조선중앙TV에 등장했다. 조선중앙TV가 15일 방영한 남성 합창단의 노래 ‘혁명무력은 원수님 영도만 받든다’의 배경화면에는 현영철이 세 차례나 등장한다. 세 번 모두 김정은이 과거 현지 시찰을 나간 현장에서 김정은 바로 옆이나 뒤에 붙어서서 북한 군부 서열 2위로서의 위상을 뽐냈다. 16일에는 조선중앙TV가 방송한 노래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의 배경 화면에 등장했다.
북한식 ‘흔적 지우기’의 기존 사례와 비교하면 현영철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숙청 간부들의 흔적을 지우는데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8개월까지 천차만별이다. 김정일 집권 시기 처형된 서관희 농업 비서는 3개월, 황장엽 비서는 7개월이 걸렸고, 김정은 시대 들어 리용하, 장수길 부부장은 각각 2개월,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8개월이 걸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경우 처형 닷새 전부터 기록영화 등 모든 영상에서 기록이 삭제됐고, 리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의 경우처럼 숙청 엿새 만에 신속하게 매체에서 사라진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13일 발표 당시 국정원도 “지금 처형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북한이 (처형을) 발표하지 않았고 현영철이 계속 기록영화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리영호는 해임 발표 전 사진을 삭제했고 장성택은 처형 5일 전 삭제했는데 다른 일반 간부들은 시간이 지나서 삭제한 만큼 대상에 따라 (삭제를 하는 시기가) 좀 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장성택 공개처형 김정은 이미지 악화, 현영철 미공개는 국제적 이미지 고려”
이같은 북한식 ‘흔적지우기’가 현영철에 대해 다소 이례적인 이유에 대해 국제적 이미지를 고려한 전략이라는 주장과 여전히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처형 시점이 좀 늦어졌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지난 4월 27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원회에 대한 ‘15명 총살’ 보고를 언급하며 “여기에 현영철 공개처형마저 사실로 확인되면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질 것을 의식해 연막전술을 펴고 있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이는 4월 28일 ‘38노스’의 총살보도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현영철 처형까지 공개되면 외부의 정보력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현영철 총살 사실을 내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 실장은 “장성택의 경우 공개처형 직전 모습까지 공개를 했는데 이게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극도로 악화시켰다. 이 때문에 북한인권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며 “리영호 때는 해임 충격이 컸지만 공개되지 않았기에 인권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아 그런 경험에서 현영철은 처형을 하고도 대외적으로 숨기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미국이나 한국, 국제적인 대북인권 압박 강화에 대한 우려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군출신 탈북자는 “김정은에게 인권은 ‘자기식 인권’이라 반당반혁명적화분자의 죽음은 주민들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혁명법 규정에 따라 (북한 내부에서) 처형을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어떻게 보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혀 현영철 처형을 공개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와 관련,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김정은이 현영철을 급작스럽게 숙청하는 배경에는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공안라인’이 있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 엘리트의 잦은 교체와 강등에도 불구하고 김원홍과 조연준은 직책 변화가 없어 공개되지 않은 젊은 비선라인의 가능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이 같은 공안라인을 통한 정치는 실제 비상상황에서의 조치일 뿐 권력에 대한 완전 장악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단기적으로 북한체제 전반이 급격한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김정은 정권의 경우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김정은이 현재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발표한 처형일보다 다소 늦게 처형된 게 아니냐며 시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에서의 김정은은 ‘절대 존재’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버젓이 보는 화면에서 (김정은)장군님 뒤에 반당반혁명분자가 계속 나온다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당반혁명분자와는 함께 숨을 쉴 수도 없고 한 하늘을 이고 살 수가 없는데 처형시키는 것은 당연”한데 그동안 흔적이 남은 것은 숙청을 위한 작업을 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북한식 ‘흔적지우기’가 현영철에서 사뭇 달라진 이유에 대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선전선동부를 장악한 이후 한국의 정보 판단에 혼선을 야기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성혜 기자
(jungtu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