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하려는 문희상, 불편한 박지원 '이 분위기 뭐지?'
김지영 기자
입력 2014.09.29 09:55
수정 2014.09.29 10:06
입력 2014.09.29 09:55
수정 2014.09.29 10:06
문 "환골탈태 분골쇄신" 강조에 박 "당원 공감해야" 딴소리
당 구상의 결정적 차이 '문은 개혁정당, 박은 포스트 DJ'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지원 비대위원이 비대위의 역할을 놓고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환골탈태, 분골쇄신을 외치며 당 혁신에 박차를 가하려는 문 위원장과 달리, 박 위원은 혁신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당원들과 국민의 동의를 우선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먼저 문 위원장이 내건 첫 혁신 과제는 당내 계파주의 척결이다. 혁신 방식이 구체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당헌·당규 개정과 지역조직책 정비 과정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위원장은 수차례 공식석상에서 당내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2일 첫 비대위 회의에서는 “당 기강을 해치는 해당행위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대처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25일 초선의원 간담회에서는 “지도력은 세우려야 세울 수도 없고 팔로우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문 위원장의 혁신은 지도부의 리더십에 바탕을 둔 하향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각 계파의 수장들로 비대위를 구성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문 위원이 범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위원과 정세균 위원의 합류는 향후 혁신 과정에서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강력한 혁신 추진은 문 위원장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당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미 문 위원장은 지난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당권과도 일찌감치 거리를 둬왔다. 이 때문에 당 혁신 과정에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문 위원장의 행보로 미루어 향후 혁신 방향은 당 지도체제와 의사결정구조 개편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관측된다. 새정치연합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는 계파주의는 주로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흔드는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문 위원장 역시 이 같은 점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문 위원장은 초선의원들과 간담회에서 새정치연합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며 “그 위에서 (서로) 자기가 선장 하겠다고 싸우는 것처럼 꼴불견이 어디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일부 강경파 의원들에 대해서는 “(지도부가) 뭘 만들어놓으면 밀어줘야지, 만들면 허물고,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문 위원장이 말한 계파주의 척결은 다른 말로 당 지도부의 리더십 강화인 셈이다. 지도부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그 어떤 계파보다 강하다면 계파가 계파주의로 변질될 소지는 적어진다.
반면, 박 위원은 비대위의 역할과 당 지도부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혁신은 끊임없이 추진하되, 그 역할은 정식 지도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박 위원은 지난 24일 2차 비대위 회의에서 “통합으로 가는 혁신이 돼야 한다. 혁신은 당의 통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혁신하겠다면서 당을 분열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당원의 총의를 모아 국민이 당을 혁신하게 해야 한다”면고 말했다. 이는 문 위원장이 구상하는 하향식 리더십과 상반되는 발언이다.
박 위원은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에도 국회 출입기자단 오찬 등 비공식석상에서 수차례 같은 생각을 밝혀왔다. 박 위원은 사실상 비대위의 역할을 당 정상화와 전당대회 준비 정도로 한정짓고 있다. 또 당 지도부가 아닌 당원들이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 위원장과 박 위원의 이 같은 입장차는 두 중진의원의 계보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두 의원은 모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계보인 동교동계 출신이다. 권노갑 상임고문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 계보는 아니지만, 문 위원장과 박 위원 모두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각각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과 공보수석비서관을 맡아 김 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하지만 청와대에 마지막까지 남아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던 박 위원과 달리, 문 위원장은 정권 초창기 당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문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출신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문 위원장은 범친노계로, 박 위원은 동교동계 혹은 호남계로 분류된다.
특히 두 중진은 당 구상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문 위원장이 초창기 열린우리당과 같은 개혁정당, 대중정당을 표방하고 있다면, 박 위원은 당의 뿌리인 호남에서 ‘포스트 DJ’를 탄생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박 위원장의 신념은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여망에 가깝다.
문 위원장의 구상처럼 당 지도부의 권한이 커지고 당 운영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개방형으로 변화하면 호남계의 기득권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차기 당권주자로 문재인 비대위원과 정세균 비대위원, 비주류의 추미애 의원 등이 떠오르고 있는 데 반해 호남에서는 마땅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박 위원으로서는 문 위원장이 말하는 혁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문 위원장이 말하는 계파주의 청산은 특정 정치색이 당론과 당권을 뒤흔드는 것을 용남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특정 계파와 정치색에는 호남계도 포함되는 만큼, 계파주의가 약해질수록 호남의 영향력도 약해진다.
한편, 문 위원장은 최근 당 혁신추진위원장으로 친노계 원로로 분류되는 원혜영 의원을 임명했다. 이미 친노 혹은 범친노계 위주로 비대위가 꾸려진 데 대해 반발이 거센 점을 고려하면, 향후 혁신 과정에 있어서도 당내 파열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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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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