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의 희로애락, 인생은 연극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입력 2014.05.11 10:31 수정 2014.05.13 17:32

<박경귀의 ad Greece⑩>그리스 민주주의의 학교, 디오니소스 원형극장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자주 인생을 연극에 비유했다. 그는 자신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의 한 대사를 통해,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고 말했다. 인생이 연극이라는 사고에는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인식이 깔려있다.

인생이 연극과 유사하다면 이는 달리말해 연극이 인간의 삶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극작가와 배우들이야말로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 사람들이라고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방하는 수단과 대상, 양식에 따라 비극이 되거나 희극이 되기도 한다. 결국 연극이란 한낱 인생의 축도(縮圖)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연극을 통해 오히려 연극과 같은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 낼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기쁠 때 노래하고 춤추며 슬플 때 한탄 속에 울부짖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홀로 느낄 때 보다 여럿이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그 감성은 더 크게 증폭된다. 인간이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객관화하여 수많은 청중이 함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게 연극이다. 연극은 삶의 모방이자 적극적 표현이다. 그리스인들은 인류 최초로 삶의 희비를 연극으로 엮어냈다. 희극(comedy)과 비극(tragoidia)이 바로 그것이다. 연극은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창안물이다.

그리스의 거의 모든 도시들은 위대한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시와 음악, 희극과 비극을 감상하기 위해 크고 작은 야외 원형극장 ‘암피테아테르(Amphitheater)’를 건립했다. 세상의 어떤 민족도 생각해 내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전제적 통치자를 위한 왕궁 대신 귀족과 대중 모두를 위한 극장을 지었다.

암피테아테르는 그렇게 열린 공간이었다. 암피(Amphi)는 그리스말로 ‘사방팔방에서’란 뜻이다. 암피테아테르는 사방팔방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야외에 시설된 원형극장을 말한다. 대중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이보다 어울리는 공간은 없을 것이다.

아테네가 디오니소스 원형극장을 건립한 것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제우스와 인간 세멜라의 아들로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숭배했고, 매년 이를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거리의 디오니소스 축제와 더불어 제의(祭儀)와 공연을 위한 주요한 무대였던 셈이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대리석 흉상의 세부다. 머리띠를 두르고 두 개의 상아 뿔이 솟아있고 포도송이로 머리를 장식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2세기경 작품, 그리스 크레타 섬의 헤라클레온 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포도 덩쿨을 머리에 쓴 디오니소스(바쿠스)의 모습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작품이다. , Leonardo da Vinci(1452-1519) 1510-1515년 作, leonardo-davinci.net.au 사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사면에는 디오니소스 원형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이어진 가파른 언덕을 청중석으로 만들었다. 자연 지세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2500년의 역사를 넘어 아직도 무대의 주춧돌과 오케스트라, 객석의 계단 일부를 보여준다.

인근에 함께 있었을 디오니소스 신전을 중심으로 한 이곳에서 매년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그리스인의 노래와 춤이 넘쳐났을 것 같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신이다.

아테네인들은 아폴론적 지혜를 추구하면서도 근심을 덜고 환희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통해 팍팍한 삶의 긴장과 고통을 잊고 새로운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쓴 비극 <박코스의 여신도들(Bakchai)>에서 코로스의 합창은 디오니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의 신이신, 제우스의 아드님께서는
주연을 좋아하시며, 뿐만 아니라
축복을 가져다주시고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평화의 여신을 사랑하신다네.
그분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이에게도
근심을 잊게 해주는 포도주의 환희를
똑같이 나눠 주신다네. 그러나 그분은
낮과 행복한 밤에 축복받은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고,
지혜롭게도 초인(超人)들로부터
생각과 마음을 멀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신다네. 평범한 다수(多數)가
자신들의 규칙과 관습으로
삼는 것을 나도 받아들인다네“


디오니소스의 대리석상의 세부 모습이다. 오른 손에 술잔을, 왼손에 포도송이를 들고 있어 주신(酒神)의 상징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담쟁이 넝쿨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얼굴 표정이 포도주를 음미하는 듯하고 약간의 취기마저 느껴져 흥미롭다. 사자 가죽을 어깨에 멘 젊은이가 아닌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점도 이채롭다.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소장, ⓒ박경귀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 바쿠스로 불린다) 신을 숭배하는 광란적인 의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 <박코스의 여신도들(Bakchai)>에서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어머니 아가우에(Agaue)가 박코스적 황홀과 광기에 빠져 자신의 아들을 사자인 줄 알고 갈기 갈기 찢어 죽이는 상황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The Youth of Bacchus' William-Adolphe Bouguereau(1825-1905) 1994 작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기원전 6세기에 건립되었다가, 소실된 후 BC 342~346년 사이에 로마의 집정관이자 예술가였던 리쿠르고스(Lykourgos)에 의해 약 1만 5천명 관람 규모로 개축되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매년 디오니소스 제전을 통해 아테네인들을 울고 웃겼던 장소였다.

시와 음악, 연극이 공연되던 음악당이자 오페라하우스였던 셈이다. 물론 때로 민회의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시대에는 예술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검투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이 예술적 감성을 키우던 공간을 로마인들은 인간의 야수성을 충동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의 남쪽 방벽 쪽에서 바라볼 때 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현재의 형태는 로마시대에 개조된 것으로 보인다. ⓒ박경귀

그리스 원형극장의 실제 형태는 반원형이 아닌 원형이었다. 무대 앞에 원형의 오케스트라 자리가 마련되고, 오케스트라 역할은 합창단이 맡았다. 그리스 원형극장은 오케스트라를 강조하고 무대를 간결하게 꾸몄다. 로마시대에 들어서 오늘날의 공연장처럼 무대를 넓히고 화려하게 만드는 대신 오케스트라는 반원형으로 축소했다.

현존하는 원형극장 중 오케스트라가 반원형으로 되어 있는 곳은 로마시대에 축조되었거나 개축된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역시 로마가 반원형으로 개조하고 검투장으로 쓸 수 있도록 객석 앞에 방벽을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터키의 에게 해 연안에 있는 에페소스의 원형극장이다. 전형적인 로마시대의 반원형 극장의 모습을 띠고 있다. 무대 부분의 화려한 공간 장식의 토대가 그대로 남아있다. 객석과 오케스트라를 가르는 방벽도 꽤 높게 세워졌다. ⓒ박경귀

그리스 원형극장은 현대의 극장과 비교해 성능은 어떠했을까? 현재까지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본래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에피다우로스(Epidauros) 원형극장이 그리스 원형극장들의 우수성을 대변해준다. 합창단이 출연하는 원형이 뚜렷하고, 그 뒤로 장방형의 무대 토대가 남아있다. 특히 오케스트라 위치와 객석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

이 극장은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극장의 중심에서 동전을 던지면 맨 위 계단의 객석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이곳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연극과 콘서트는 그리스인들은 물론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색창연한 이 극장에서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볼 날이 오려나?

그리스 원형극장의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에피다우로스(Epidauros) 원형 극장의 모습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리스 원형극장은 현대의 스피커와 같은 기계장치 없이 배우들과 합창단의 연기와 노래가 정교하게 시설된 극장의 천연음향 효과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배우는 대사를 제대로 크게 전달하기 위해 깔대기 같은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 메가폰의 기원이다.

당시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모두 가면을 썼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생생한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시각적 전달효과보다 스토리의 청각적 전달효과가 더 중요했다. 천연음향 효과가 우수했기 때문에 집정관, 장군 등 고위 공직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시민이 앉던 앞 계단의 로열박스나, 민중들이 앉았던 윗부분의 일반석이 작품 감상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그리스 원형극장은 음악당으로서의 성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의 언덕 등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야외에 설치했다는 점에서 연극이나 음악을 감상하는 낭만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줄 수 있었을 듯싶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중심에 두고 객석이 부채살처럼 배치되었으니, 청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와 무대로 모아지는 효과도 컸을 것 같다.

우리도 이런 수천 년의 역사가 서린 낭만적 공연장을 하나라도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쉽지만 그리스인 이외에 세계의 어느 나라도 고대에 귀족과 백성이 한 자리에서 문학작품을 감상하며 감흥을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를 위한 공연장을 생각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 원형극장의 효용은 로마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식민도시마다 많은 원형극장이 건립되었다. 아직도 많은 도시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원형극장들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서쪽에 위치한 아티쿠스 음악당도 그런 예다.

이곳에서는 매년 6~9월까지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 동안 그리스 고전극과 각종 콘서트, 오페라 등이 주말마다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 성악가인 조수미씨의 공연도 있었다고 한다. 아티쿠스 극장 앞은 야간에도 조명을 비춰 건축물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도 교수의 인솔 아래 사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야간 출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티쿠스 음악당은 아테네에서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공공 건축물이다. 로마 태생의 그리스 귀화 정치가인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 BC 101/102~BC 177/178)가 죽은 아내 레킬라를 추모하기 위해 BC 160~161년에 건축해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했다. 이 음악당은 그리스 초기의 원형극장보다 무대 뒤 건물이 화려한 전형적인 로마식 원형극장이다.

이 극장에 앉아 클래식 공연이나 콘서트를 관람할 경우 2천여 년의 손때 묻은 공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감흥이 배가될 것 같다. 이런 고색창연한 공연장에서 언제든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그리스와 세계의 음악애호가들이 부럽기만 하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티쿠스 극장의 모습이다. 아이폰5 파노라마 기능으로 찍었다. 광범위한 전경(全景)을 포착하는 데 효과적이다. 객석의 좌석이 말끔하게 보수되어 야외 음악당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박경귀

아티쿠스 극장 앞은 야간에도 조명을 비춰 건축물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도 교수의 인솔 아래 사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오랜 시간 동안 야간 출사(出寫)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박경귀

야간에 아티쿠스 극장의 아치를 통해 객석과 아크로폴리스의 야간 경관을 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박경귀

그리스의 암피테아테르는 현대 음악당으로도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리스 원형극장을 본뜨고 현대적 장치를 가미한 현대식 원형극장이 각광을 받는 것도 원형극장의 음악당으로서의 본래의 기능이 탁월했음을 입증해 준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교외의 샤를로텐브로크에 있는 발트뷔네(Waldbuehne) 원형극장이 바로 그 예다. ‘발트뷔네 암피테아테르’는 1935년 2만 2천명 관람 규모로 건립된 이래 1984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스 원형극장을 본뜬 현대식 발트뷔네 원형극장이다. 오케스트라 위치에 객석을 마련한 점이 다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Gryffindor 사진

그리스인들의 예술적 감성과 역량은 탁월했다. 그리스가 인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시인, 희극 및 비극 작가를 탄생시킨 점이 이를 입증한다. 세계 4대 비극작가 중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모두 고대 그리스인이 아닌가.

우리는 호메로스를 능가하는 서사 시인을 알지 못한다. 어느 송시(頌詩)도 핀다로스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의 작품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감상하는 그리스의 서사시, 서정시, 희극과 비극 작품들은 그들이 당대에 남긴 전체 작품 중에서 우연에 의해 보존된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소포클레스는 모두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 7편의 비극과 1편의 사튀로스극이다.

이렇듯 최고의 비극작품으로 2천 5백년 이상 인류를 감동시켜 온 작품들이 실은 그리스 천재 작가들이 남긴 미미한 잔해일 뿐이다. 만약 그리스인들이 창작해 낸 문학 작품이 오늘날까지 모두 온전하게 전해졌다면 인류의 문화유산은 한층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보존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당대의 단아했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극장을 가득 메운 1만 여명의 시민들이 열광하고, 분노하며, 때로 탄식하며 눈물지었을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리스의 힘이 바로 도시마다 있던 원형극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형극장에서 연중 다양한 작품이 공연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인의 삶이 여유롭고 풍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극과 비극의 공연은 단순히 연극 공연이라는 예술적 기능만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아테네인들에게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가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디오니소스 제(祭)는 아테네 시민을 응집시키는 국가적 제의(祭儀)였기에 참가하는 시민에게 수당이 지급됐다.

디오니소스 제에서 비극의 공연은 국제적 연극제에 다름없었다. 여기에 참석하는 비극시인은 최고의 작가여야만 했고, 경연에서 우승한 작가에게는 무한한 영예가 주어졌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도 여기서 공연되었다. 아이스퀼로스는 <아가멤논>을 포함한 3부작 <오레스테이아>를 공연하여 생애 마지막 13번째의 우승을 차지했다.

기록에 의하면, 비극 경연에서 소포클레스는 18번, 아이스퀼로스가 13번, 에우리피데스가 5번 우승했다. 디오니소스 제에서 경연된 작품들은 하나 같이 당대 아테네의 시민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또한 작가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영원한 고전으로 전해졌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또 하나의 아카데미였다. 희극과 비극 작품을 통해 시민들은 그리스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신과 영웅들의 활약상과 희로애락을 보고 들었다. 또 공연 작품을 통해 과거 선조들의 영웅적 행위들을 회고할 수 있었다.

이는 곧 국가를 유지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전승하는 정치적 교육 기능에 다름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민주정을 창안해 내고 이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도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나왔다고 봐도 크게 틀린 게 아닐 듯싶다. 그들이 디오니소스 제를 국가적 제의로 중시했던 게 이를 반증하는 게 아니겠는가.

한편 시민들은 신과 영웅들의 탐욕과 부도덕성,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희극과 비극을 통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희석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나아가 주인공들의 극단적 비극을 보면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지 않았을까? 이런 정서적 기능 또한 ‘디오니소스 암피테아테르’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특별한 선물이었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잘 구성되고 이들 간의 협력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했다. 이들은 시인과 합창 가무단을 운영하는 코레고스(coregos), 주연배우인 프로타고니스테스(protagonistes)였다. 아무리 천재적 작가에 의해 훌륭한 희곡이 준비되어도 합창 가무단의 지원이 없이는 공연이 불가능했다.

아테네 시민 중 부유한 이들은 연극 공연에 필수적인 공연자인 합창 가무단을 구성하고 연습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자진하여 부담했다. 일종의 사회공헌 활동을 한 이들이 바로 코레고스였다. 코레고스는 자신의 합창 가무단이 공연한 작품이 우승할 경우 디오니소스 극장 주변에 기념비를 세워 그 기쁨과 영광을 시민들과 나눴다.

현재 남아있는 리시크라테스(Lysikrates) 기념비가 대표적인 예다. BC 334년에 열린 디오니소스 제에서 리시크라테스(Lysikrates) 합창단이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동쪽, 아크로폴리스 성벽의 동쪽과 남쪽의 모서리 부근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 인근에 있는 리시크라테스(Lysikrates) 기념비 ⓒ박경귀

디오니소스 극장의 공연은 하루에 4~5편씩 나흘 연속 계속되었다. 해가 뜬 직후에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공연되었다. 비극의 경우 3부작이 하루에 한 편씩 공연되었으니, 작품의 전말을 계속 보기 위해선 3일 연속 관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흘 동안 15~17편의 연극 공연을 하루 종일 관람했던 아테네 시민들의 집중력과 인내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제비뽑기로 선정된 10명의 심사위원들은 청중의 열광과 성원의 정도를 보고 우승자를 투표로 결정했다.

두 시간 연극 공연 한 편을 관람하는 것도 힘겨운 현대인들의 짧은 지구력과 사뭇 대조적이지 않은가. 배우들과 합창단의 초인적 능력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배우들과 합창단은 무려 2만 행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암송하여 공연했다. 암송 능력이 현저히 퇴화된 현대의 배우들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완전한 재현이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비극과 희극 작품은 공연될 희곡 대본이 아니라, 읽기 위한 소설과 같은 희곡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은 숱한 연극 공연 관람을 통해 그리스의 시민의식과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의 연극 공연은 그리스 세계에서 연극 공연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이는 아테네의 문화적 역량의 총화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제전을 기획하는 관리, 위대한 작품을 쓰고 연출했던 작가, 탁월한 배우와 합창단, 경연에 필요한 재정을 흔쾌히 후원한 유력 시민의 헌신적 공헌이 숨어 있었다. 또한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 생생한 현실을 재현한 작품들의 교훈을 이해하고 공유한 시민들의 문화적 열정과 소양이 뒷받침되었다. 그리스 원형극장은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인의 사유와 정신세계가 공유되고 학습되는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도 했던 것이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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