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쫄병 죽어서도 장군' 창피한 대한민국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3.12.08 10:26
수정 2014.02.11 11:18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채명신 장군이 남긴 숙제

무명참전용사 묘역 가장 기리는 외국보고 배우길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 이 땅에서는 미담(美談)이 되는 일도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전쟁 때 소위로 참전했으며 베트남전쟁 당시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 별세했다. 5.16혁명에 가담했으나 유신에 동참하지 않는 바람에 중장으로 예편하여 여러 나라 대사를 역임했었다. 평생 권력에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르지 군인다운 삶을 살아온 그는 유언대로 장군묘역 대신 국립 서울현충원 병사묘역에 전우들 곁에 잠들어 국민들을 감동케 했다.

고인은 지난 5월 JTBC '뉴스콘서트' 출연 당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전우들에 대한 예우를 당부하며 “군인들이 개인의 권력과 소원과 명예, 이러한 욕심에서 우러나온 군에서는 국민이 안 싸운다”는 말을 남겼었다. 사실 최첨단 무기를 많이 가졌다고, 군사 수가 많다고, 혹독하게 훈련시킨다고 해서 강군(强軍)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하가 똘똘 뭉쳐 하나가 될 때, 국민이 군(軍)을 신뢰하여 군민(軍民)이 하나가 될 때 진정 강군이 된다. 자신의 마지막까지 강군을 위해 바친 고인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예우와 혜택은 별개다

한국인들은 풍수에 대한 믿음 혹은 미신이 강해서 묘를 쓸 때에는 명당을 따지며 후손들의 발복(發福)을 바란다. 고 채명신 장군 병사묘역 안장을 통해 이제 모든 국민들도 국립묘지에 장군묘역이 따로 있으며, 그 계급만큼이나 넓고 호화롭고(?) 위쪽 명당(?)자리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찌 장군뿐이랴. 장교와 졸병 묘역도 따로 구분되어 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선진문명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차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걸 한국에서는 예우라고 한다.

어느 선진국 국립묘지가 한국처럼 계급별로 차등 예우하든가? 제대하면 모두 민간인이다. 목숨에도 등급이 있고 계급이 있나? 진시황(秦始皇)의 군대도 아닌데 지하에 묻혀서도 생전의 계급대로 싸우란 말인가? 무명용사탑 주변으로 계급 구분 없이 차례차례 안장하는 것이 상식이겠다. 채명신 장군도 비록 말씀은 남기지 않았지만 분명 그러기를 바라고 함께 싸운 전우들 곁에 묻어 달라 하신 게다. 관련기관이 이를 못해낸다면 국가인권위원회라도 나서야겠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다. 그리고 땅이 워낙 커서 각 주마다 군인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인데다 전통적으로 군인을 명예롭게 여기기 때문에 모두가 존중한다. 해서 군인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사후엔 그곳에 묻힐 수 있지만 굳이 우리처럼 계급별로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11월 28일 오후 서울현충원 관계자들이 월남전 참전용사 제2묘역에서 고 채명신 중장의 임시 묘비를 정리하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초대 주월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예비역 중장의 유언에 따라 이날 병사묘역인 월남전 참전용사 제2묘역에 고인의 유해가 안장됐다.ⓒ연합뉴스

군인묘지가 아닌 전사자만을 위한 국립묘지를!

요즘도 그러는지 알 수 없으나 구소련 시절 청춘남녀가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곧바로 국립묘지로 달려가 무명용사 묘에 헌화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찌 구소련뿐이겠는가. 어느 나라 어느 국민 할 것 없이 무명용사묘나 그 기념비를 가장 신성하게 여긴다. 해서 어느 나라든 국립묘지는 무명용사를 위한 추모비가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왕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보자. 우리나라 국립묘지엔 독립투사 및 군인전사자는 물론 전직 대통령, 장성,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 월남전 참전용사들, 순직한 경찰과 소방관, 민주화 유공자 등등 이런저런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 묻힌다. 좋은 게 좋다고 정권 바뀔 때마다 조금씩 느슨해져 왔다. 해서 전쟁이 없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이제는 묘지가 모자라 납골묘로 안치하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면 국립묘지란 군인 전사자(戰死者)만 모시는 것이 원칙이겠다. 조금 더 넓히자면 전쟁 중 크게 다쳐 평생 사람 구실 못하고 살다간 전상자(戰傷者)와 사고사(事故死)든 병사(病死)든 현직 군인으로서 사망한 자까지겠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전직 군인, 직업군인들까지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상식논리상 무리란 생각이 든다.

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천수를 다 누리고 가는 사람을 국립묘지에 모시는 것이 어색하다는 말이다. 기실 자기 대신 죽어간 전우들이 있었기에 그분들의 영광 또한 더욱 빛나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먼저 간 전우와 부하들이 받아야 할 영광까지 대신 누리고 간 셈이 아닌가? 결코 충분할 수는 없지만 공을 세운 만큼 나름 대우와 혜택을 받아가며 여생을 살지 않았나? 물론 그분들의 공로를 무시하거나 명예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전사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상식과 양심, 그리고 염치의 문제

휴전 60주년 즈음해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 발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이 나라 산천엔 십만 이상의 국군 유해가 흩어져 있다. 대부분 이미 진토가 되어 설사 뼛조각 몇 개 찾는다한들 제 이름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말 그대로 무명용사다. 그들의 목숨 빚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지난 날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장군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사자들과 함께 묻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격이 맞지 않다.

혹여 “내가 무슨 염치로 전사한 동료나 부하들이 잠든 묘지에 나란히 묻힐 수 있겠나. 차라리 내 뼛가루를 전사한 전우들의 묘지 위에 뿌려다오. 잔디가 되어 그들의 묘지를 지키고 싶다!” “전우들이 죽어간 00고지에 뿌려다오!” “휴전선에 뿌려다오. 넋이나마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죽은 전우들과 함께 하겠다!”라며 국립묘지에 묻히기를 마다하는 전직 장군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군대 가서 썩는다”는 등 반(反)군사적이었던 언행 때문인지 자신의 고향에 묻혔다. 그 외 그다지 명예롭다 할 수 없는 전 대통령들, 그리고 병역 미필한 전 대통령까지, 5년마다 나오는 대통령이 나중에 모두 현충원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이제라도 국립묘지에 관련된 규정을 재정비해서 명실상부 신성한 국립묘지가 되도록 했으면 한다. 더불어 국립현충원이 아닌 퇴역군인들을 위한 군인묘지, 경찰묘지, 의인(義人)들을 위한 별도의 국립 혹은 도립 묘지를 조성하는 방안도 연구했으면 싶다. 물론 그마저도 최대한이 아니고 최소한으로.

프랑스 드골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으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참배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참전 용사들에겐 참배를 허용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의 딸 곁에 묻혔다. 하여 유언대로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장례식에 참석치 않고 자신들의 집무실에서 묵념을 올렸다. 아무렴 훌륭한 위인이라면 굳이 아무 데에 묻힌들 사람들의 존경심이 덜해지겠는가?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면 그 학교가 명문이듯 위인이 잠든 그곳이 곧 명당이다. 무덤 없다고 지워질 이름이라면 미련을 가질 일이 아니다. 백골이 진토가 된 무명용사들 앞에 차마 부끄럽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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