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실격’ 케이로스, 맨유 박지성도 울렸다?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3.06.19 10:29
수정 2013.06.19 10:41

2007-08 챔피언스리그 결승 후보 엔트리 나니 추천?

케이로스 수석코치 부임 후 박지성 '수비형 윙어'


헌신했던 박지성은 ‘2007-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첼시전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맛봤다.

외신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맨유를 결승으로 이끈 박지성을 선발은커녕 7명의 후보명단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사실에 의아했다. 현지에서는 부상 가능성을 속보로 타전하기도.

훗날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당시 상황을 놓고 “지도자 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면서도 “박지성은 성실한 선수지만, 결승에서는 득점력이 뛰어나거나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선수가 적합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퍼거슨은 첼시전 당일에도 박지성과 루이스 나니를 놓고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맨유 수석코치’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현 이란 감독)와 머리를 맞댄 끝에 대런 플레처, 박지성, 안데르손, 루이스 나니 중 한 명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이견을 좁혔다.

결국, 희생자는 박지성이 됐다. 맨유 중원은 선수층이 얇아 플래처와 안데르손은 부상 중에도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박지성과 나니로 압축됐는데 중거리 슈팅력을 갖춘 나니가 최종 후보명단에 포함됐다. 케이로스는 포르투갈의 제자 나니에게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 경험을 선물한 셈이 됐다.

나니는 2007년 5월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2005년 입단한 박지성에 비하면 당시 나니는 설익은 유망주에 불과했다. 2007-08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주로 교체로 출전하며 경험을 쌓는 데 주력했다. 나니의 맨유 이적 과정에선 ‘스승’ 케이로스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케이로스는 나니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 스포르팅 경기를 자주 참관했고 최종적으로 퍼거슨에게 추천했다.

모잠비크 태생의 포르투갈 국적이 있는 케이로스에게 박지성은 어떤 존재였을까. 분명한 사실은 케이로스가 맨유 수석코치로 온 뒤부터 박지성은 결코 달갑지 않은 ‘수비형 윙어’ 포지션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케이로스는 ‘골잡이형 윙어’ 호날두와 나니의 공격력 극대화와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박지성을 ‘수비가담’으로 제한했다.

축구에선 감독이 전략과 전술을 짜고, 수석코치가 선수의 특성(장단점)을 보고한다. 케이로스를 비롯한 맨유 코칭스태프는 퍼거슨에게 박지성의 왕성한 체력을 수비가담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고, ‘선장’ 퍼거슨이 이를 수용했다. 그 결과, 박지성은 나니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뿌리박혀 2007-08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빠지는 배경이 됐다.

박지성은 포르투갈과 인연이 깊다.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당시 포르투갈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지만 박지성 때문에 헝클어졌다.

당시 포르투갈 축구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현지 언론은 “한국의 홈 어드밴티지가 지나쳤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1966년 월드컵 득점왕 에우제비오를 비롯한 포르투갈 전·현직 축구 영웅도 “경기운용의 묘가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그 가운데 케이로스가 있다. 그 또한 결과에 실망했다.

이란 감독이 된 케이로스에게 2002 한일월드컵은 아직도 ‘개운치 않은 뒷맛’일까. 이번 최종예선서 한국과 같은 조에 포함되자 “한국은 강하지만 반드시 설욕(?)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18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전에서 비신사적 행동을 저질렀다. 이란의 1-0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매너에서는 졌다.

케이로스는 경기 전부터 이란전 설욕을 다짐한 최강희 감독을 향해 “우즈베크 유니폼을 선물하고 싶다.”, “축구는 전쟁이 아니다”, “이란 국민에 사과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심지어 최강희 감독 얼굴을 프린트한 티셔츠 착용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란 승리가 확정되자 최강희 감독 면전에 ‘주먹감자’ 세리머니까지 했다. 케이로스의 들끓는 도발에 휩쓸린 ‘제자’ 이란 골키퍼도 최 감독을 향해 도발했다. 스승이 자제력을 잃으니 제자까지 이성을 잃은 순간이었다. 케이로스는 박지성을 울리고 최강희호도 울렸다. 한때 레알 마드리드를 지도하고 퍼거슨 감독을 보좌했던 그를 기억하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 케이로스는 더 이상 명장이 아니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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