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계수 0.625의 경고…자산 양극화 역대 최악 [2026 경제전략]
입력 2026.01.09 14:01
수정 2026.01.09 14:01
IT 편중과 노동 이중구조 심각
K자형 성장의 덫…국가적 비상사태
조세 복지 효과 시스템 재설계 시급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극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올해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이 고착과 돼가는 'K자형 성장'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미나이
한국 경제가 ‘K자형 성장’의 늪에 빠졌다. 거시 지표상의 성장은 지속되는 상황에도 그 결실이 가계와 기업, 지역으로 고르게 흐르지 않는 단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자산 양극화 지표는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산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득 측면에서도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3으로 나타나 OECD 평균인 0.307을 상회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 역시 5.7배로 집계됐다. 우리 사회의 소득 분배 구조가 주요 선진국(평균 5.2배)에 비해 현저히 불평등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더욱 심각한 지점은 시장 불평등을 완화해야 할 국가 재분배 기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한국의 세전·세후 지니계수 개선율은 17.6%에 불과하다. 이는 프랑스(42.2%), 영국(29.7%), 미국(22.1%) 등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고소득층은 자산 취득 여유가 있는 반면 저소득층은 취약해지는 소득 양극화가 자산 양극화로 전이되고 있다”며 “자산이 있는 계층이 이를 담보로 추가 자산을 취득하는 ‘돈이 돈을 부르는 구조’가 심화되며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계층 이동 사다리는 갈수록 '오르지 못할 계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층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양극화 개선의 지름길이다. ⓒ제미나이
IT 편중과 노동 이중구조…무너진 계층 이동 사다리
양극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산업 구조의 급격한 재편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IT 산업에 성장이 편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IT 부문 성장 기여율은 1990년대 1.0%에서 최근 5년(2020~2024년) 사이 30.5%로 수직 상승했다. 반면 비IT 부문과 중소기업은 투자 및 인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직면하며 성장이 정체됐다. 이러한 산업 간 격차는 고스란히 노동시장 격차로 전이됐다.
현재 노동시장은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라 철저히 이분화 돼 있다.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은 57.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1.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고용 형태에 따른 신분 고착화를 야기한다.
이러한 격차는 청년층 삶을 직접적으로 제약한다. 실제로 30대 이하 순자산은 전 연령대에서 유일하게 감소(0.9%)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다리의 소멸’로 규정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는 “상위 20%의 부동산 자산이 하위 20%의 129.6배에 달할 정도로 집값이 격차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며 “국가 견인의 주축인 청년 세대의 자산 감소는 미래 성장 동력 자체를 잠식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리적 불균형 역시 임계치를 넘어섰다. 비수도권의 근간을 지탱하던 기계·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 경제의 활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본사의 95.5%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쏠림을 더욱 가속화했다. 그 결과 25~34세 청년 취업자의 50.9%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본사는 95.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자연스레 수도권 쏠림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그 결과 25~34세 청년 취업자의 50.9%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미나이
양극화의 종착역, 저출생과 내수 침체라는 국가적 위기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 격차를 넘어 국가의 생존 기반인 인구 구조까지 파괴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로 인한 수도권 내 무한 경쟁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고용 불안은 청년 세대의 결혼과 출산 기피로 직결된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8명까지 추락한 것은 양극화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인구학 전문가는 “양극화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청년들에게 ‘생존을 위한 비혼’을 강요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지역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출산 장려 정책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수 경제 기반 또한 흔들리고 있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보다 소비 성향이 낮다.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비성향은 54.9%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소득이 상위층에 쏠릴수록 전체 경제의 소비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GDP 대비 80%를 상회하는 가계부채는 민간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소득은 정체된 가운데 빚으로 버티는 가계가 늘어나면서 경제의 하부 조직이 괴사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이번 경제성장전략에서 ‘국민균형성장’과 ‘양극화 극복’을 전면에 내건 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자산 양극화가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저출생의 방아쇠가 된 지금, 기존의 성장 제일주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양극화 극복은 이제 복지 차원의 논의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최후의 보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지표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체제 전환의 신호탄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학계 한 관계자는 “지금 마주한 양극화 데이터는 우리 경제의 하부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었다는 경고”라며 “성장의 결실이 특정 산업과 수도권에만 고착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성장 동력인 인구와 소비 기반 자체가 붕괴하는 시스템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제는 낙수효과에 기댄 양적 팽창이 아니라,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구조적 균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