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미국만 잘 살고 미국만 안전"…고립의 대가는?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5.01.21 11:40
수정 2025.01.21 11:58

자유무역주의와 집단안보체제로 성장한 미국, 신고립주의로 회귀하나

새로운 경제‧안보 질서 재편,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 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캐피털원아레나에서 행정명령 1호에 서명한뒤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많은 세계인들의 관심과 우려 속에 20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일국의 대통령 취임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건, 세계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덩치를 지닌 국가들 중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유일한 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종신독재 체제인 중국과 러시아에는 이런 이벤트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예고한 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그에 걸맞은 정책 방향들을 쏟아냈다. 약 30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의 핵심은 ‘미국 위주의 경제’와 ‘미국 위주의 안보’다. 한 마디로 자기들만 안전하게 잘 살겠다는 신고립주의 선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게 마련이다. “다른 나라가 미국에서 이익을 취하고,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돈을 쓰는 꼴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품격 떨어지는 구호에 많은 미국인들이 동조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미국이 반세기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초강대국의 자리에 오른 배경에 자유무역주의와 미군의 해외 파병을 통한 집단안보체제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꺼내든 신고립주의는 의문을 낳는다.


미국이 과연 그동안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주의를 주도하고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해외에 미군을 파병했을까.


사실 유라시아 대륙과 두 개의 대양을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진 미국의 기본적인 대외 정책은 고립주의였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메리카의 지배자로만 남겠다는 게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정책 기조였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패권주의자들은 존재했고, 대세인 고립주의에 막혀 울고 싶던 그들의 뺨을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시원하게 갈겨 주면서 미국은 세상으로 나왔다.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과 ‘강력한 군사력’을 양손에 들고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금태환제를 폐지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무역수지와 무관하게 전세계의 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 체제가 필수였고, 그렇게 미국이 만들어낸 질서에 성공적으로 편승한 국가들은 미국에 준하는 부를 누렸다.


강력한 군사력은 본토를 지키는 것보다 해외에서 위협 요인을 사전 제거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됐다. 미국이 수많은 전쟁을 주도하거나 전쟁에 개입하면서도 독립 이후 내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본토가 전장(戰場)화되지 않은 것도 그 덕이다.


해외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자유무역주의와 해외 주둔 미군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반미 시위에는 반드시 반자유무역주의와 미군 철수 구호가 뒤따랐다.


이제 미국의 새 리더인 트럼프가 스스로 그 구호를 외친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보호무역주의 정책 기조를 펼칠 것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나라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미국 국민에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미국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을 무시하고 보편관세를 도입하거나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보호무역주의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를 지시하며 공약을 현실화할 태세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미국이 외국의 국경 방어에 지원해왔던 군사력을 남쪽 국경(멕시코와의)으로 집중시키겠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 종식시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 자금 지원 부담에서 벗어나고, 한국 등 미군이 주둔한 국가에는 병력 철수를 지렛대로 더 많은 비용 부담을 지우겠다는 공약과 맥이 닿는다.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 경제‧안보 질서에서 미국이 빠진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 시장으로서의 미국의 가치는 희석될 것이고,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들도 당장은 아니겠지만 조금씩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달러화 가치가 치솟을 경우 미국의 수출경쟁력 하락도 불가피하다. 세계 경제질서 재편은 트럼프와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러-우 전쟁이 트럼프의 종용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빼앗은 상태에서 종전될 경우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무력을 앞세운 침략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부정적 교훈을 줄 수 있다. 미군 주둔 비용을 놓고 벌어지는 동맹국과의 마찰은 상대 진영에는 엄청난 호재다.


물론 트럼프의 극단적 발언은 상대와의 담판에서 좋은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엄포, 즉 사업가적인 스킬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안보 질서를 담판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국에 대한 신뢰를 크게 뒤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누구나 플랜B를 찾게 마련이다. 많은 국가와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의 대안’을 모색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트럼프와 미국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미국의 몰락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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