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않음’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케이팝 팬덤 [기자수첩-문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4.12.22 07:00
수정 2024.12.22 07:00

환경 단체 결성하고 불평등 반대하는 등 사회 문제 적극 참여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를 둘러싼 탄핵 정국에서, 여의도 거리에 등장한 응원봉을 든 2030 세대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은 안겨준 듯 보였다. “콘서트 같은 K-시위 문화”라며 외신도 집중했고, 정치인들도 한 손에 응원봉을 들기 시작했다. 케이팝이 낯선 기성세대도 미리 곡을 익혀 함께 노래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는 단순한 ‘팬심’의 발현을 넘어 사회부조리 등 ‘옳지않음’에 저항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는 케이팝 팬덤의 새로운 사회 참여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케이팝 팬들의 특징은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높은 충성도와 결속력을 지니고 있고 강력한 조직력, 적극적인 정보 습득 및 공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케이팝 ‘팬덤’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는 늘 ‘빠순이’ ‘빠돌이’라는 멸칭도 함께 따라 붙었다. 과거엔 후자로 불리는 편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논란이 잦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케이팝 산업이 성장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팬덤이 추구하는 가치도 자연스럽게 진화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마냥 옹호하던 과거와 달리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옳은 길로 가도록 질책하는 식이다.


팬덤 차원에서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환경 보호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한 환경 단체 ‘케이팝 포 플래닛’을 결성하고, 음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소속사에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또 팬들은 아이돌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에 숲을 조성하거나,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환경 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인종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관련 기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실제 지난 2022년에는 그룹 세븐틴의 유튜브 채널에 베스킨라빈스의 간접광고가 등장하자 팬들은 “임금 차별과 부당 노동 행위를 저지른 회사의 제품을 광고하지 말라”며 SNS상에서 보이콧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탁핵 집회 참여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 아이돌 그룹 팬이라는 A씨는 2주 연속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며 “누군가를 지지해서 집회에 나간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비상계엄 직후 국회로 달려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정치도 모르는 게 뭘 안다고 나가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면서 “실제로 정치에 대해 잘 몰랐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공정’과 ‘정의’ 그리고 ‘자유’의 가치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내란사태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통적인 정치 참여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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