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할 수 없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오정환 칼럼]
입력 2024.11.24 11:38
수정 2024.11.24 11:38
오정환 전MBC노동조합 비대위원장 칼럼
“기본적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조차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 이야기다. 지난 21일 연세대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시국선언 제목이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였다. 노골적인 반정부 선언을 하면서도 교수들은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방송 신문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아무리 성경을 인용했다지만, 시국선언 내용에 정부를 향해 “망할 것들!” “이 악당들아”라는 저속한 표현을 사용했다. 어떻게 이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받는 상황일 수 있는가. 역설적인 주장이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고려대 일부 교수들도 시국선언을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반국가세력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써가며 국민을 몰아세우고, 검찰을 동원하여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반국가세력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써가며 국민을 몰아세우고, 검찰을 동원하여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말 참 잘했다. 지난 문재인 정권 때 ‘적폐’라는 용어로 국민을 몰아세우고, 거의 200명을 감옥에 보내고, 검찰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동안 고려대 교수들은 뭐 하고 있었나. 그때는 입이 없었나. ‘문재인 대통령 퇴진 촉구’는커녕 ‘그래서는 안 된다’는 숨죽인 목소리 한 번 들은 기억이 없다.
이해한다. 그때는 무서웠을 것이다. 공연히 용기를 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였다. 정부를 비판할 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민주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그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한양대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을 하면서 윤석열 정권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켰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 폐지된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언제 부활했다는 말인가. 교수들이 사실 확인조차 안 하고 남을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한양대 교수들은 시국선언에 “지식인은 탐구하여 얻은 지식과 지혜로 인류와 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썼다. 엄청난 자부심인데, 그에 걸맞은 자세가 아쉽다.
경제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이화여대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에서 “윤석열 정권의 정책 실패로 물가 상승률은 크게 높아졌고, 이를 숨기려다 불거진 대파 논란은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물가가 오른 것은 코로나19 시기에 문재인 정권이 대규모 통화증발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정책을 쓴 거의 모든 나라에서 후유증으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그것을 현정권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날씨 때문에 대파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하자 농협에서 실시한 할인행사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할인가격 정도로 내려가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을 총선을 앞둔 MBC 등 일부 언론이 물가에 어두운 대통령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를 ‘물가 상승을 숨기려다 불거진 논란’이라고 비난한 이화여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MBC보다 더한 왜곡이다.
이화여대 교수들은 또 “미국과 일본에 편향된 외교로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수지도 급속히 나빠졌다”고 비난했다. 이를 읽는 국민들은 현정부 들어 전체 무역수지가 나빠진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아니다. 대중 수출이 줄어든 대신 대미 수출이 늘어 작년 6월 이후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무역수지는 8억 달러 이상 흑자였다. 오독 가능성을 알고 썼으면 나쁜 사람들이고, 모르고 썼으면 정말 글을 이상하게 쓴다.
중앙대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에서 ‘윤석열 정권의 친일 편향적 외교가 국민에게 치욕과 수치심을 안겼다’고 비난했다. 현정부 외교가 친일 편향적인지도 의문이며, 그걸로 치욕과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국빈 방문 중 목포상고 은사를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양국 방송사에서 촬영하는 가운데 일본말로 인사를 했다. “せんせい、わたくしです. あの だいちゅうですよ.” 외환 위기 상황에서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또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문화를 개방해 오늘날 문화강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중앙대 교수들에게 그에 대한 평가를 묻고 싶다. 그러지 말고 우리민족끼리 대원군 시대로 돌아갔어야 했을까.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며칠 전 페이스북에 최근의 시국선언들이 지식인도 대학인도 대표하지 못하는 ‘진영’ 선언일 뿐이며 그 안에서도 일부를 대변한다고 진단했다. 한편으로 다행이면서도,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한국 사회의 지성을 상징하는 교수들이 특정 진영의 정략에 도구처럼 이용되어도 되는 것인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