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음료로 착각해 이웃에 빙초산 건네 숨지게 한 80대 시각장애인 [디케의 눈물 315]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4.10.26 06:57
수정 2024.10.26 06:57

피고인, 이웃에 빙초산 건네 사망케 해…재판부, 금고 4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

법조계 "과실치사죄 2년 이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형…다소 낮은 형량 선고된 듯"

"수사기관, 피고인 행동에 의도성 없다고 판단해 살인죄 아닌 과실치사죄로 기소한 것"

"2심서 중대 과실 추가 입증되면 형량 가중되겠지만…유족과 합의해 실형 선고 가능성 낮아"

ⓒ게티이미지뱅크

빙초산을 비타민 음료수로 착각해 이웃에게 마시게 해 숨지게 한 80대 시각장애인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선 피고인이 비록 장애인이라고 해도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보면, 다소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시각장애인은 타인에게 본의 아니게 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인지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4단독 정인영 부장판사는 최근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시각장애 1급인 A씨는 지난해 9월 울산 자택 인근에서 평소 알고지내던 B씨와 C씨에게 비타민 음료수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이를 받아 마셨는데 B씨는 별다른 이상이 없던 반면, C씨는 곧바로 속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면서 화장실로 가 구토를 했다. C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조사 결과, 당시 A씨가 C씨에게 건넸던 병에는 '식용 빙초산'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시각장애인으로서 문자를 볼 수 없고, 색깔을 구별할 수도 없으며 눈앞에 움직임이 없으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어 과실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시각장애인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물을 건넬 때 독극물은 아닌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B씨와 C씨에게 건넨 음료수병의 촉감이 서로 달랐던 만큼 다른 병인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봤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현행법상 과실치사죄의 경우 2년 이하의 금고 7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된다. 사망이라는 결과에 비해 다소 낮은 형량이 선고되었다고 판단된다"며 "법원은 피해자가 음료수를 확인하지 않고 마신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점, 유족과 합의한 점 등을 종합해 선처를 해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시각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최소 금고 1년의 실형이 선고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시각장애의 경우 자신의 장애 상태에 비춰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촉각·후각 등을 통해 위험성 있는 물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만약 항소심에서 검사가 사망사고 당시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에 대해 추가로 입증하게 된다면 형량이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피고인이 유족과 합의한 상태이므로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실형만 선고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고 전망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여러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시각장애인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의도성이 있었던 건 아닌지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유족, 주변인 조사를 통해 피고인과 원한관계가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을 것"이라며 "결국 이런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 살인죄가 아닌 과실치사죄로 기소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왜 빙초산을 가지고 있고 피해자들에게 건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 있지만 과도한 추측은 삼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살인을 의도한 것이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점 ▲피고인이 80대의 시각장애인이라는 점 ▲피고인과 피해자가 지인 관계였고 특별히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해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양형요소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과실치사라 하더라도 형량이 다른 케이스와 비해 가벼운 편인데 80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 고려된 결과로 보인다. 만약 피고인이20·30대 청년이거나 비장애인이었다면 처벌 수위는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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