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펀드’ 신규 상품 설정액 평균 1억5000만원…디폴트옵션 승인 등 과제 ‘산적’

황인욱 기자 (devenir@dailian.co.kr)
입력 2024.10.16 16:36 수정 2024.10.16 16:56

초기 설정액 유입 제한…돌파구 마련 시급

은행 판매 외면에 자금 유입처 한계 뚜렷

금투협 “시장 안착 위해 관심·노력 지속”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디딤펀드 출범식에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가운데)과 자산운용사 대표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디딤펀드가 출시 초기이지만 신규 상품의 설정액(운용규모)이 평균 1억6000만원을 밑도는 등 크게 늘지 않으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승인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 금융투자협회와 자산운용업계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될 전망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5개 자산운용사 대표가 1사 1펀드로 운용되는 자사 디딤펀드에 가입하고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모든 디딤펀드에 가입하는 등 업계가 책임운용을 강조했으나 디딤펀드의 실질적인 흥행 성공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딤펀드는 금투협과 자산운용사 공동브랜드로, 은행 예·적금에 쏠린 퇴직연금액을 펀드 시장으로 가져와 실질적 노후 준비를 돕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서유석 금투협회장이 후보 시절 내건 공약이기도 한다.


이 펀드는 연기금 및 공제회의 분산투자 운용방식과 유사한 자산배분전략을 활용해 장기적으로는 물가상승률+알파(α)의 수익률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험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밸런스드 펀드(BF)다.


금투협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디딤펀드 출범식을 열었다. 지난달 25일 디딤펀드 공동 출시를 기념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운용업계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디딤펀드는 출시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으나 시장의 관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단 평가를 받고 있다. 설정액이 불어나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 24곳의 디딤펀드 설정액은 총 1151억2602만원이고 평균 설정액은 47억9691만원이다. 이는 10곳 디딤펀드가 기존 펀드를 개편한 데 따른 것으로 신규 출시된 15곳으로 한정하면 규모는 크게 줄어든다.


지난달 25일 신규 출시된 교보악사(2억3900만원)·마이다스에셋(1500만원)·미래에셋(2억8800만원)·삼성(9900만원)·신영(3억600만원)·IBK(2700만원)·에셋플러스(5400만원)·NH-아문디(6300만원)·우리(2억1900만원)·KB(3100만원)·하나(1800만원)·한국투자(5100만원)·한화(5100만원)·현대인베스트먼트(2400만원)·흥국자산운용(208억7200만원)의 디딤펀드 설정액 총합은 223억5700만원이다.


흥국자산운용이 모그룹 계열사로부터 끌어 온 초기 설정 자금 200억원을 제외하면 자산운용사 15곳의 디딤펀드 설정액은 23억5700만원이고 평균 설정액은 1억5713만원에 불과하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맨 앞줄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이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개최된 디딤펀드 출범식에서 자산운용사 대표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금융투자협회

서 회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디딤펀드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라며 출시 초기 설정액이 크게 불어나지 않는 데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오히려 초장기적 관점에서 설정액 증가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디딤펀드의 출시는 우리나라에서 소외됐던 퇴직연금 시장의 스테디셀러인 자산배분용 BF를 중심으로 가져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라며 “자산배분형 BF가 퇴직연금 시장을 이끌었던 이유는 초장기 투자에 걸맞은 복리 효과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수익률은 단기 효과는 미미할 수 있으나 30년이 넘는 투자 기간에서는 막대한 차이를 가져온다”며 “장기간의 복리 효과는 고수익형 상품보다는 디딤펀드와 같은 적은 변동성의 상품이 더욱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의 자신감에도 시장에선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디폴트옵션 승인과 은행에서의 취급 규모가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디폴트옵션으로 승인 받으면 은행 창구로부터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대다수 적격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DF)로 구성돼있고 BF 유형은 적은 상황이다.


TDF는 가입자가 젊을 때는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고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을 늘려 자산을 보존하는 상품이다.


실제로 은행은 디딤펀드 판매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리금 보장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은행 입장에서 디폴트옵션 대상이 아닌 디딤펀드를 라인업에 넣기 꺼려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투협과 자산운용업계는 디폴트옵션 승인과 은행 판매처 다양화 등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단 방침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호주의 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Mysuper)는 기금 별 운용상품을 단일화해 가입자 선택 편이성, 상품의 비교 가능성, 운용사 관리 효율성 등을 증대시키며 대표 상품 형태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각 운용사별 단수의 디딤펀드로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서 회장도 “디딤펀드 출시에서 협회의 역할을 마치는 게 아니라 디딤펀드가 시장에 안착하게끔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디딤펀드. ⓒ금융투자협회

황인욱 기자 (deveni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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