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의 연말선물은 ´꿀꿀´ 돼지였다


입력 2008.12.26 08:42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육영수 해마다 그늘진곳 조용한 선행

71년 나주 나환자촌에 씨돼지 20마리 새끼 나면 다른 곳에

좋은 학교 나오고 출세한 그들이 막걸리를 마셔야 했던 고역

연말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쿵 하고 전봇대에 부딪친 것처럼 맞딱뜨린 연말이다.

올겨울 한가지 바람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가서 창밖을 내다보며 차 한잔을 마시는 일이다. 바라보는 이 아무도 없는 산등성이 고목 우듬지의 까치집에서 까치 부부의 촐싹거리는 사랑이라든가, 하늘과 맞닿은 머얼리 수평선으로부터 밀려오는 바닷물의 육중한 출렁임 소리도 보고듣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아주 심드렁한 찻집에다 맘껏 시간을 풀어놓고 산머리에 해지고 달뜨는 것을 보면서 달빛에 젖어서, 달빛을 사륵사륵 즈려 밟고 다가오는 여인의 환상을 마중하고 싶은, 언감생심 분수 모르고 가당치도 않은 사치를 꿈꾸었었다.

겨울 찻집에서의 차 한잔의 사색은 불가능한 과욕이었다.

속진(俗塵)에 찌든 자의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술이다. 소주병을 손에 쥘 때로부터 가슴에 소주를 부어넣을 때의 느낌은 연장선상에서 알딸딸하게 진화되어 다가온다. 어디를 맘대로 가지 못하는 구속된 일상의 사슬을 풀어주고, 온갖 잡것에 대한 대한 고뇌를 위로해 주고, 그리고 어쩌다 눈에 들어오는 텔레비전 뉴스에 혈압 오르는 것을 얼마만큼은 다스려 준다.

텔레비전에서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사람도 있긴 있다. 대통령이다. 어느 장삼이사(張三李四)들보다도 대통령은 가장 구속당해 있다. 어디를 맘대로 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구속된 권력이다. 최고권력은 최고로 구속된 권력이다. 그보다는 텔레비전 뉴스 앞에서 부글부글 끓는 가슴에 소주를 들이붓는 술꾼이, 소주 한병을 더 사러 당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오죽 자유로운가.

그렇게 매서웠다는 대통령 박정희가 무교동 낙지집을 가고 싶어도 못갔다니 말해 무엇하랴. 검은 안경에 점퍼 차림으로 어느어느 국밥집이나 실비집에 나타나 막걸리를 마셨다는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텔레비전 보급이 제대로 안되었던 60년대의 이야기들이다.

70년대 숨가빴던 나날에는 일과후 청와대에 꼼짝없이 갇혀서 퇴근하려는 비서관들을 식당에 붙잡아 놓고 막걸리로 답답함을 달래야 했으니, 언필칭 좋은 학교 나오고 출세한 청와대 직원들이 입에 맞지 않는 막걸리를 마셔야 했던 고역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구속된 권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육영수 사랑법

그런가 하면 부인 육영수는 동서남북 못가는 데가 없었다. 옆에 따라붙어야 할 사람들이 그리 필요치 않았다.

비서관 한사람만을 데리고 어느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을 찾아가거나, 홍수로 사납게 부풀어오른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 고립된 수해지역에 나타나 그곳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육영수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사랑의 열매’를 뭇사람의 옷깃에 달아줄 때도 중학생부터 회사원, 노인들은 물론 지게꾼까지도 한푼의 사랑에 동참하러 몰려드는 바람에 광화문 지하도가 꽉 막혀도 육영수에게는 경호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를 가려 해도 대통령 부인이 온다면 부산스레 영접 준비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적십자사 봉사원들 틈에 섞여들어가 재봉틀을 돌리거나 전방의 병사들에게 보내는 위문품을 포장하며 늘 밝게 웃곤 했다.

인간 육영수.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육영수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좋은 집안에 태어나 시집 잘 가서 잘 살다 잘 죽었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만 기복과 갈등구조가 없는 인생은 대중에게 재미도 없고 문화예술의 소재로도 빵점이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점은 있고, 행복에도 불행은 있다.

천편일률적인 찬사나 숭모는 식상하기 쉬운 법. 혹자는 소녀시절의 육영수가 공부를 못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배화여고 다닐 때 어지간히도 성적이 나빠 뒷줄에서만 놀았다고 한다. 존재도 없는 소녀였다.

그런 여성이 전쟁 중에 군인과 결혼을 하고 대통령 부인의 자리로 변신을 거듭했다. 요는 그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오지게 탁마(琢磨)한 변신으로 육영수는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평범한 모성(母性)의 사랑을 국가로 확대한 점이 다르다.

어느 곳보다도 추울 때 가장 추운 곳, 즐거운 날에 슬픔과 아픔의 소리가 나는 곳,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현장에는 반드시 육영수의 자취가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청와대 육여사’에게 숱한 도움을 청하고 호소를 했지만, 하다못해 한 남자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사법고시에 합격하더니 배신했다며 시골 처녀가 눈물로 일러바치는 일까지 전혀 막힘이 없었다.


육영수 사랑법에는 구애가 없다.

그 자신은 불교신자이면서 딸이 천주교 영세를 받을 때 천주교 예복 차림으로 의식에 동참할 만큼 세속의 편협된 종교관 따위에도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연말은 누구에게나 분주하게 마련이지만, 대통령 부인 육영수도 더욱 예외는 아니었다.

눈이 펄펄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예고하는 12월 24일, 용산역 장병휴게소에 모여 있던 휴가병들이 갑자기 환성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었다.

대통령 부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앞치마를 두르고 장병들에게 손수 라면을 끓여주고 서빙을 해주는 도우미로 온 것이었다.

군용열차 편으로 도착한 병사들이 “충성!” 거수경례를 붙이고 스스럼없이 “어머니”를 호칭하며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얼마후 병사들이 라면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대통령 부인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육군 참모총장이 부랴부랴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 병사들이 모처럼 몸을 녹이고 있는데 총장님 보고 도로 얼겠어요.”

대통령 부인이 눈을 흘기면서 이렇게 말하자, 참모총장은 웃음을 못참아 병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일시에 휴게소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1970년 크리스마스 전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용산역에 나갔던 육영수의 모습이다.

영화 <벤허>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차의 질주를 기억하고 있지만, 육영수가 눈여겨본 것은 나병(한센씨병)으로 고통받는 주인공의 가족이었다고 한다.

처녀 시절의 육영수는 남이 먹던 숟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는 위생관념 내지는 결벽증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병 환자의 손을 잡는 것이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으니, 학교 공부만이 사람을 키우는 것은 아니로되 어쨌든 공부 못하던 소녀가 자신을 만들어간 놀라운 변신의 일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당시의 나병 환우들은 대통령 부인이 자기들 손을 잡아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생의 위로를 받을 만큼 고마워했으니 말이다.

문둥이라고 불리던 예전의 나환자들은 버림받은 존재였다. 그런 그들이 사는 전국 80여곳의 부락에 특별한 사랑을 보내고, 미감아들이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것도 육영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1971년의 크리스마스날. 세찬 바람이 부는 악천후를 뚫고 한대의 헬기가 전남 나주로 날아갔다.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탑승한 헬기는 나주군 노안면 유송리, 현애원이라는 음성 나환자촌에 착륙했다.

그가 가져온 선물은 좀 별나다 싶은 것이었다. “꿀꿀” 소리가 요란한 씨돼지 20마리였다.

“이 돼지들을 잘 길러 훌륭한 살림밑천으로 만들어 보세요. 1년 후 이 돼지들이 새끼를 낳으면 저에게 2마리만 보내주기 바랍니다. 그것을 다른 곳의 환우들에게 보내고, 또 거기서 새끼를 얻어 또다른 곳에 보내 전국의 환우들이 생활하는 데 근심걱정을 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

육영수는 이렇게 부탁을 했고, 현애원 주민들은 이듬해 봄에 2마리의 20배인 40마리를 청와대에 보내고 닭과 한우까지 키우는 대규모 축산단지까지 조성하게 되었으나 계속해서 씨돼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주민들은 오랜 세월 현애원에 베풀어준 대통령 부인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은덕비를 세우려 했다가 추모비로 바꾸어야 했던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부인의 운명을 공식 발표할 때 기자들이 울면서 기사를 받아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눈물이 기자수첩을 적시던 그 시간에 하늘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이 연분홍 한복이었던 것이다.

“연분홍 날개가 하늘로 날아올랐지”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슬픔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 육영수의 사랑과 따뜻한 웃음을 만나고자 함일 터이다.

인간 육영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이 너무 어둡고 사방이 꽉 막혀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구원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육영수였다. 그래도 괜찮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그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도 없는 것이 또한 희한하다.

“박정희 대통령하고 저하고는 대화를 해본 일이 없어요. 68년 봄인가 한번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한테 세배하러 가는 예가 있었어요. 야당은 별로 안가는데, 저는 갔어요. 세배했더니 아주 반갑게 맞으면서 세배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도 저를 한쪽으로 끌더니 4, 5분 얘기 했어요. …그 때 육영수 여사가 나를 보더니 친정식구같이 반가워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왜 부인하고 같이 안왔느냐?’고 하면서 정말 안타깝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육영수 여사를 세상 사람들이 흠모하는 이유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진 일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김대중의 말이다. (주간동아 1999년 5월 27일)

2002년 대선 때 후보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 부인이 누구냐”는 물음에 “어렸을 때부터 육영수 여사를 존경하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만 각설하고…….

겨울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춥고 메마른 무정세월에 한적한 찻집의 차 한잔이 그립고, 거기 달빛 젖은 창문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사랑이 그립다.

사랑이란...조용필이 노래하는 ‘그 겨울의 찻집’에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그것으로 말해도 좋을 성싶다.

그때 그 시절, 한해의 해거름에 현애원 주민들은 “꿀꿀” 소리나는 연말 선물을 가져온 대통령 부인을 웃음으로 맞이했지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렇다, 사랑은 그것으로 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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