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졸속행정으로 순직보상금 못 받았다면..." [디케의 눈물 264]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4.08.06 05:07
수정 2024.08.06 05:07

망인, 1956년 군 복무중 사망했지만 '병사' 처리…40년 뒤 '순직' 처리됐지만 보상 못 받아

법조계 "오래 전 발생한 사건이라도…국가권력 불법 행위 있었다면 소멸시효 완성 안 돼"

"국가 기관, 졸속행정과 행정편의주의적 태도로 과거사 숨겨…정당한 보상청구 받아들여야"

"군대 폐쇄적 행정문화 개선 안 되면 피해자 계속 생겨날 것…적극적 행정처리 이뤄져야"

ⓒ게티이미지뱅크

60여년 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군인의 유족이 뒤늦게 순직 사실을 알고 군을 상대로 낸 보상금 지급 소송에서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선 국가 권력의 졸속행정과 불법적 행위로 감춰졌던 과거사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진 경우 지급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며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국가에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잘못된 과거사가 드러나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A씨가 국군재정관리단을 상대로 "보상금 지급 불가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5월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의 부친은 1950년 육군에 입대해 복무 중이던 1956년 1월 사망했다. 육군본부는 약 40년 뒤인 1997년 고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재분류했지만 유족에게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2021년 A씨 부친에 대해 "군 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고 A씨는 이를 바탕으로 군인 사망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국군재정관리단은 "유족이 사망통지서를 받은 날(1956년)로부터 5년이 지나 시효의 완성으로 급여 청구권이 없다"며 거부했지만 법원은 군의 지급불가 결정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군 복무 수행 중 사망했는데도 군은 이를 '병사'로 규정해 유족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으며 뒤늦게 망인에 대한 순직 결정을 하고도 이를 원고에게 통지하지 않았다"며 "원고가 군인사망보상금은 물론 국가배상 등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사건이나 재심사건 등에서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랜 기간이 지나 뒤늦게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 채권자(유족)가 본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고 국가권력의 불법적 행위가 있었다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60년이든 100년이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면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면서 "행정편의주의적 태도와 졸속행정으로 과거사를 숨기거나 위조하는 등 부도덕,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은 국가기관에서 피해자들의 정당한 보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잘못된 과거사가 드러난다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고 강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대운)는 "망인의 사망 당시 유족이 제대로 조치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고 이후에도 군의 보상 거부, 순직 사실 미통보 등 채권자의 권리 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사정이 있었다"며 "법적 안정성 달성이라는 소멸시효의 입법 취지도 중요하지만 국가는 법률관계 당사자에게 형평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면 소멸시효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군 당국에서 유족 측에게 적절한 지원을 했다면 법원까지 올 사안도 아니었다. 군 집단의 폐쇄적 특성과 행정문화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고 제2, 3의 피해자는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며 "입법적 개선 보다도 군인 인권보호를 위한 군 당국의 적극적 행정처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군 법무관 출신 배연관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원칙적으로 시효가 지나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다만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게 지나치게 정의관념에 어긋나서 도저히 받아 들여지기 어려울 정도로 민법의 '신의성실', '권리남용 금지' 등 대원칙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이러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다시금 확인한 의미의 판결이다"고 전했다.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