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겉멋 들지 않는 열정…해답을 향한 정진 [D: 인터뷰]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4.07.14 13:58
수정 2024.07.14 13:58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12일 개봉…‘1위’

장발에 주유소 유니폼 입은 렉카기사 ‘조박’ 열연

“망가졌다고 생각 안 해…협업 속 최선 다할 뿐”

다시 볼 수 없는 조합 이선균-주지훈 하모니 빛나

배우 주지훈 ⓒ이하 CJ ENM 제공

배우 주지훈과의 인터뷰는 막힘이 없고 묻는 재미가 있고 듣는 맛은 더 크다.


주지훈에게는 무엇을 물어도 즉답이 나온다. 평소 자신의 연기, 작품의 흐름, 업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늘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계산하지 않고 솔직하게 본인의 생각을 말할 것이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어서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물어도 자신의 업에 대해, 관계에 대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점이 명확히 서 있기에 자신의 세계관에 비춰 의견을 낼 수 있어서다.


배우들 가운데 손꼽게 말을 잘하는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감독의 눈으로, 제작자의 눈으로, 배급사의 눈으로 자신의 연기와 작품을 볼 수 있는 영민함을 지녀서다. 세상에 온전한 ‘객관’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각도에서 다층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종합한 결과는 객관에 가까운 식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지훈에는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사고하는 본능과 노력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없이, 정답 혹은 해답을 향해 쉼 없이 정진하는 본능과 노력은 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배우 주지훈은 잘하는 것만 하지 않는 건 기본, 멋진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캐릭터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기본, 작품이 부르고 감독이 원한 바라 해도 마치 스스로 원한 것처럼 ‘신명 나게’ 즐기는 재능이 있다.


이기적 생존본능이 강한 인물 ‘조박’으로 분한 주지훈. 하지만 반려견 ‘조디’를 끔찍히 아끼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모성이 캐릭터 반전을 내포한다 ⓒ

덕분에 배우 주지훈이 신작을 내놓는다고 하면 미리부터 미소를 빙그레 지으며 기다리게 되고, 공개되면 얼른 보고 싶고, 드디어 보면 실망이 없다. 주지훈은 마치 이번 작품이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 안의 모든 것을 꺼내 이리저리 갈고 양념하고 반죽해 캐릭터를 빚는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 제작 CJ ENM STUDIOS‧블라드스튜디오, 배급 CJ ENM)에서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건, 본인은 그토록 치열하게 임하고선 우리에겐 별거 아니라는 듯 ‘그저 즐겨주시라~’고 청한다. 관객이 즐거워하면 행복해하고, 크게 사랑받지 못해도 끝없는 늪에 빠지지 않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라면 하나를 잘 끓여도 칭찬을 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영과 육을 다해 하나의 인물을 세상에 내놓고도 ‘매번, 유독 나만 칭찬받기는 어렵다’는 세상의 원리에 순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배우 주지훈은 열심히 채우고 미련 없이 비워낸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력,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미, 풍성하고 짙은 감성, 갖출 걸 다 갖추고도 최고의 대우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네’와 같은 입지 속에서 철이 깊이 든 영향일까.


차 모형 세트가 아니라 진짜 차 트렁크에서 촬영했다. 들어가 눕는 걸로도 벅차 보이는데 차 내부를 향해 몸을 숙이고 앉아 사진에서 주지훈의 허리춤 뒤로 보이는 검은 구멍으로 얼굴과 팔을 들이밀며 연기했다.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 5회 차를 촬영했다는 후문 ⓒ

배우 주지훈의 영민함이, 성실함이, 성숙함이 좋다. 겉멋 들지 않는. 시들지 않는 열정이 좋다.


실제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주지훈은 어깨까지 닿는 장발에 주유소 직원 유니폼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멋짐을 장착한 채 렉카 기사 ‘조박’이 되어 입으로도 두 발로도 좌충우돌 내달린다. 188cm가 넘는 키로 허리 욱여넣고 실제 차 트렁크에 들어앉아, 차 뒷좌석 스키스루(트렁크와 통하는 구멍)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도 하고 어깨가 으스러지면서도 팔을 뻗어 몸부림치는 것도 모자라 속사포 랩을 해대며 큰 웃음을 준다.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 제작 JK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김인권(오동춘 분)마냥 이리저리 휩쓸리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웃음을 통해 관객을 잠시 쉬게 하는 ‘쉼표’ 기능을, 주지훈은 주연 역할과 동시에 해냈다.


“조박이 기능적 역할 많이 맡고 있잖아요. 왜 이런 역할 맡느냐 물으시기도 하는데, 저는 취향이 없는 인간이에요(웃음). 어려서부터 재미있게 본 캐릭터가 많고, 장르 가리지 않고 봐서인지 (망가지는)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저는 망가졌다고도 생각지 않아요. 거부감이라는 단어도 웃기네요, 물어보시니 그리 표현한 것일 뿐이에요.”


“저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덱스터 시스템, 그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을 알고 있잖아요, ‘신과 함께’ 시리즈도 함께했고. 어떤 감독님들은 동시녹음에 목숨 걸고, 덱스터는 할리우드처럼 풀(full, 전체를) 녹음해요, 호흡까지. 그리고 (덱스터 시스템은) 필요하면 촬영이 끝난 후 성우 녹음하듯이 후시를 다시 하시는 것도 아니까 더 신나게 연기했어요.”


“우리의 상상과 결과물로 나온 현물은 다르잖아요. 후시, 기술적 부분으로 도움받을 수 있어서 그 간격을 메울 수 있었어요. 무슨 얘기냐면, 제 캐릭터가 기능적 역할, 숨 쉴 수 있는 지점인데. 관객께서 재난을 받아들일 때 다이렉트로(직접적으로) 공포를 느끼시면, 모든 캐릭터가 다 그러면 무게감이 커지잖아요. 그러면 팝콘 무비로서 즐기시기에 너무 진지해지고요. 조박은 이를 막는, 관객이 영화에 라이트하게(가볍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이에요. 현장에서는 이에 충실히 연기했고 다 함께 만족했어요, 그런데 편집할 때 보니 영화 톤에서 벗어나 날뛰는 지점들이 있는 거죠. 5일에 걸친 후시 녹음을 통해 다 바꿨어요. 그렇다고 현장에서의 판단이 생각부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감독님, 제작사 함께 상의한 결과를 따른 거죠.”


상대적으로 출연 분량이 적은 조연이라면 ‘감칠맛’일 수 있지만, 주연의 분량으로 개성 큰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떤 계획과 조절로 임했는지를 묻자 위와 같이 상세하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고립으로부터의 탈출, 인생처럼 영화도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

‘달변’ 주지훈은 OTT가 각광 받는 시대, 영화 흥행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대한 질문에도 숙고해온 의견을 내놓았다. 흥행 성적에서 자유롭기 힘든 개봉영화 신작 주연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개인적 생각일 뿐이라는 전제로 말했지만, 깊었다.


“제가 평론가도 아니고 개인적 생각인데, 무언가 알이 깨어서 새로운 게 자라고 있는 시기 같아요.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최선에 대한 그 기준이 서로 다르겠지만요.”


“솔직히 (흥행이) 부담스러운 건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처음 다가오는 건 내 것으로가 아니라, 누가 찍고 있다고 하면, ‘예산 얼마래?’ ‘100억 원’ ‘요즘 그렇게 큰 영화를?’ 이야기 나누다… ‘그럼, 내거는 얼마가 들어갔는데’에 생각이 미치고 급 부담감이 오는 거죠.”


“저는 ‘관대한 시선들이 있을 때 문화예술이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깊이, 넓이, 다양성에 대해 날카로울 때 깊은 작품, 생각을 공유하는 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배우잖아요, 작가와 감독이 아니고. 여러 장르, 여러 세계관에 대입해 일하는 사람이라 다만 열심히 할 뿐인데요. 영화도 하고, TV드라마하고, OTT도 하고 있고. 배우로서 OTT 드라마도 굉장히 열심히 찍고 있는데, ‘내가 영화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OTT 발전에 나조차 일조하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해요, 어려워요. 답이 없어요, 역사의 흐름들. 코로나라든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흐름에 어떤 산업은 지고 어떤 산업은 피고, 영화도 그 여파를 받고 있고요. 그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네요.”


크게 기쁘거나 크게 슬프지 않은 ‘평온’…슬픔의 무게도 함께 나누는 협업 ⓒ

‘달관한 듯한’ 어조, 일희일비하지 않는 관조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배우였지만 더욱 짙어진 느낌. 이유가 뭘까.


“어릴 땐 뭐 잘되면 어깨 올라가고, 반대면 어깨 내려가고 그랬죠, 저도. 기쁨도 크고 슬픔도 컸는데요. 나이 들고 아는 게 많아지면서 ‘아. 영화가 드라마가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를 절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동료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커지고요. 제가 뭐 잘돼도 크게 기쁘지 않고…. 안 되면 가슴 아프죠, 잘 싸서 선물처럼 드리고 싶었는데.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는데 (그게 힘드니까요). 그래도 옛날처럼 슬프지 않아요, 내 혼자의 몫이 아니라 그조차 함께 나누니까요. 제 자리에서 최선 다한다는 말을 제가 많이 하는데, 진심으로 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예요. 함께라 슬픔의 무게도 나눠지고,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영화 ‘비공식작전’만 봐도 ‘OTT에서 엄청 보신다’ 소리를 전해 들으니, ‘그래. 많이 보셨다니… 좋다’. (극장 관객 수) 하나가 아니라 합이구나. 또 평온이 오는 거죠. 물론 캐스팅이 부진할 정도로 극장 흥행이 힘들면, 계속 일해야 하는데 못하면 많이 힘들겠죠.”

주지훈 “선균이 형은 좋은 동료, 좋은 선배. 돌아오지 않는 시간, 늘 소중해” ⓒ

어떤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 대상자)에게서는 사회에 발 딛고 섰다는 인상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주지훈은 이이의 직업이 배우인가, 지금 연기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만큼 세상에 뿌리내린 모습 속에 누구의 직업과 삶에 대입해도 걸맞은 생각들을 들려준다.


주지훈의 연기가 단단한 이유, 극 중 캐릭터가 현실에 꼭 있을 법한 인물로 보이는 이유에는 캐릭터 준비 단계부터 배우의 노력이 깃들고 촬영현장에서 풍부한 표현력이 이를 실현하는 바가 크겠으나, 그 바탕에는 배우 자신과 그의 철학이 세상을 단단히 딛고 선 일상이 있다.


건강한 사고는 얼굴에도 연기에도 묻어난다. 속으로는 멋지게 나이 들고 겉으로는 점점 싱싱해지고 있는 배우 주지훈의 신작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그가 빚은 입체적 인물 ‘조박’을 극장에서 만나보자.


푸른 바다 위에서 패러세일링으로 하늘을 활기차게 가르는 주지훈, 보트에서 조종키를 안정감 있게 잡고 있는 이선균, 두 배우의 하모니가 일품이다.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는 조합, 놓치기엔 아깝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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