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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클래스’ 두기봉 감독 “마흔 살, 촬영을 멈췄던 이유는…” [다시 보는 명대사⑦]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4.07.08 08:17 수정 2024.07.08 08:17

홍콩 누아르 거장 내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로 관객과 만나

“여기서 한 조각, 저기서 한 조각 NO…우리는 창작을 해야겠다!”

“내가 영화이고 영화가 나다!…위가휘 감독과 ‘밀키웨이’ 설립”

“영화 ‘용호방’의 메시지…넘어져도 괜찮아, 꿈을 갖고 달리자!”

감독 두기봉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짜깁기‧흉내 말고 창작하라”


액션무비로 칸‧베니스‧베를린의 초청을 두루 받은 홍콩 누아르 영화의 거장 두기봉 감독(69)이 한국을 다녀갔다. 3일 입국해 6일 출국하는 짧은 일정은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가 마련한 ‘마스터 클래스’ 행사를 위해서였다.


BIFAN은 ‘마스터 클래스’ 행사에서 두기봉 감독의 희망대로, 극동영화제의 도움으로 디지털 복원된 영화 용호방’(2004)을 공개했다. 상영이 끝난 후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의 사회로 두기봉 감독과의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두기봉 감독이 말한 주옥 같은 말을 전하기에 앞서, 그 이해를 돕는다는 걸 핑계 삼아 개인적 팬심 차원에서 ‘삼천포’로 잠시 빠진다면. 두기봉 감독에게 반한 건 지난 2007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만난 영화 ‘익사일’이었다. 스스로 설립한 제작사 ‘밀키웨이 이미지’ 이전의 영화들인 ‘지존무상2’, ‘심사관’ 시리즈, ‘동방삼협’ 시리즈, ‘적각비협’도 좋아했지만, 가슴이 설렌 건 ‘익사일’이었다.


영화 ‘익사일’ 포스터 ⓒ이하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익사일’(2006)은 우정, 가족애,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리고 인생의 회환, 폭력에 대한 반성, 그리고 희망이 깃든 영화였다. 서부극에 대한 반성을 시작점으로 인간의 고독과 인생의 본질을 탐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1992)와 비슷한 울림을 주는 작품인데, 유머와 웃음이 추가됐다.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익사일’에 앞서 두기봉 감독은 ‘흑사회’(2005‧2006) 시리즈를 통해 홍콩액션 영화의 새 장을 넘어 세계영화 누아르 장르 안에 두기봉만의 독특한 좌표를 선명히 했다. ‘흑사회’ 1편은 제5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익사일’ 후에는 ‘스패로우’(2008)가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보면, 두기봉은 TVB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연출 일을 시작했다. 남 보기엔 일 잘하는 드라마 PD였지만, 그는 시키는 대로 예정된 대로 찍어 붙이는 작업보다 작품 전체를 홀로 총괄하는 영화 연출을 희망했다. 기획부터 연출, 제작을 스스로 해야 하나의 궤를 갖는 창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계로 발을 옮긴 두기봉은 또 일을 잘했다. ‘심사관’을 비롯해 홍콩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갈아치우는 흥행물들을 냈다.


그러나 감독 두기봉은 여전히 창작에 대한 목이 말랐다. 계속해서, 꾸준히 신작을 내기로 유명한 그가 1995년부터 1년간 영화에서 손을 놓았다. 진정 창작이라 할 과정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그가 얻은 답의 출발은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후 ‘니딩 유’를 비롯해 종종 공동연출을 선보이게 되는 위가휘 감독과 ‘밀키웨이 이미지’를 세웠다.


영화 ‘흑사회’ 스틸컷 ⓒ

1997년 홍콩이 반환된 뒤 많은 유명 감독과 제작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진출을 모색하며 ‘홍콩영화’를 방치할 때, 두기봉은 꾸준히 자국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의 특장을 살려 누아르 기운 가득한 액션영화를 만들고, 혹여나 흥행에 실패하면 멜로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제작사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다시 액션영화를 만들어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둘 다 거머쥐며 영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영화 ‘더 히어로’ ‘암화’ ‘미션’ 등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밥줄 차원에서 직업으로 영화를 만들고, 배우들 스케줄이 서로 맞지 않아 대기가 필요한 때는 취미로 다른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영화밖에 모르는 영화인 두기봉.


그에게는 계획이 다 있는 것인지, 심지어 액션영화를 찍으면서도 탈고된 각본이 없고 그냥 찍을 분량만큼만 촬영 당일 아침 배우에게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를 골탕 먹이기 위함이 아니고 제작사 설립에 이은, 두기봉이 찾은 ‘창작의 방법’이다. 그것도 연출자인 본인만의 창작을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의 새로운 창작을 십분 끌어내려는 방안이다. 현장에서 배우와 깊이 논의한 후 촬영을 진행해선지 긴 시퀀스를 단번에 찍기도 하고, 작품 전체를 빠르게 찍어 제작 기간과 제작비를 줄이는 것에도 능하다.


‘마스터’ 두기봉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BIFAN 2024로 돌아와, 두기봉 감독은 ‘밀키웨이 이미지’ 이전과 이후가 극명히 갈리는 이유에 대해 ‘마스터 클래스’를 함께한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했다.


“1995년도에는 영화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마흔 살 정도 됐을 때 당시 한 생각이, 과연 앞으로 내가 영화계에 있을까? 있으면 감독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상업영화를 촬영했을 때 사랑받아도 제가 ‘엔지니어’인 것 같았어요. 여기서 한 조각, 저기서 한 조각 가져와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1년의 정체기 동안,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친한 친구 위가휘라는 감독, 그 친구와 저와 이념이 같았는데 ‘우리는 창작을 해야겠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카피하거나 편집하는 게 아니라 ‘나는 영화이고, 영화가 나다!’라는 신념을 갖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홍콩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밀키웨이’를 1996년도에 설립했는데 98, 99년 영화계가 굉장히 좋지 않은 시기였어요. 설립하자마자 굉장히 당황했어요. 하지만, 다시 드라마 찍기는 싫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또 쓰며 ‘밀키웨이’ 회사를 밤새 지켰던 이유는 그 회사가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아서였어요. 그때만 해도 언제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제 자신을 믿는 것, 영화 찍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몰랐어요. ‘돈만 조금만 투자하면 영화 만들 수 있는데!’ 그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러다 250만 홍콩달러(약 4억 원)를 투자받고 ‘미션’을 찍었습니다. 많은 기자가 어째서 상업적 흥행이라는 쉬운 길을 두고 창작의 고행을 택했는지 물어봤을 때, 저게 영화는 ‘챈스 앤 초이스’(chance & choice), 두 가지 단어로 답할 수 있습니다. 운명이기도 하고 선택이기도 합니다.”


영화 ‘용호방’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마스터 클래스’ 상영작으로 영화 ‘용호방’을 선택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2003년 홍콩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2024년 우리에게도 와닿는 기적, 역시 영화는 두기봉 감독의 말처럼 운명이기도 선택이기도 한가보다.


“영화 ‘용호방’(2004)은 2003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시기, 실업난에 전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울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홍콩, 이후 경제 전성기를 이뤄낸 바탕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거나 세컨 잡(두 번째 일, 흔히 투잡)을 하던 때’를 말하며 영화를 통해 우울에 빠진 이들에게 ‘넘어져도 괜찮아, 꿈을 향해 달리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용호방’은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스가타 산시로’를 오마주(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 했다고 평가받는다. 혹자는 속도감을 늦춘 버전의 리메이크라고도 말한다. 두기봉 감독은 좋아하는 자신의 영화로 ‘스패로우’와 ‘용호방’을 꼽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한 감독의 현재형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최고라고 할 영화는 없었습니다. 단지 많은 사람이 물을 때 하나를 말해야 해서 ‘용호방’을 얘기하는데요. 사람의 청년 시기를 담은 대표작인 것 같습니다. ‘스가타 산시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데뷔작으로 압니다. 하나의 감독이, 누구든 열정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도전하면 된다는 걸 봤습니다.”


“마지막 풀숲에서의 (배우 고천락-양가휘 분 인물의) 유도 대결 장면은 사실 일본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젊었을 때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고,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엔딩 장면에서 숲속 대결 후 태양이 보입니다. 그 메시지는 해가 지면 반드시 뜨는 날이 있고, 태양도 인간을 위해 응원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싶었습니다. 1970년대 홍콩 사람들이 일본 드라마를 본 것처럼, 지금은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봐서 공감할 수 있는 것에서 가져온 것일 뿐이고) 유도를 소재로 한 것 역시 일본의 유도 자체보다는 유도의 ‘도’(道) 자의 깊은 뜻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한 관객이 ‘졌던 태양도 반드시 뜬다고 말씀하시는데 영화의 주인공은 실명한다. 희망이 아니라 슬픔을 주는데, 여기에도 태양이 뜨는지’ 물었다. 두기봉 감독은 현답을 내놓았다.


“사실 인생은, 사는 데 있어서 순조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눈을 잃어서 누구는 죽고 싶겠으나 새로운 여정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 포커스(초점)를 두면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요. 해 뜨고 해 지는 건 매일 반복되는 일인데, 이를 두고 매일 슬퍼할 수도 매일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을 즐겁게, 다채롭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이 저마다 준비해온 티켓, 비디오테이프, DVD, 책, 티셔츠 등에 두기봉 감독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데일리안DB

미래에 초점을 두면 희망이 보인다는 두기봉 감독, 그에게 그의 차기작은 금세 볼 희망이 있는지 맨 앞줄의 관객이 물었다.


“언제 촬영이 끝날지 모르겠지만 현재 촬영 중입니다. 제 영화는 촬영이 끝나야 각본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그 시기를 모르겠습니다(웃음). 아시겠지만 촬영할 때 각본을 쓰지 않습니다.”


지난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큰사랑을 받은 배우 양조위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암화’(1998) 이후, 21세기에는 함께 작업한 영화가 없다. 두기봉 감독은 스타 배우들과도 작업하지만, 스타 캐스팅에 연연하기보다 작품에 맞는 배우나 실력파, 새로운 얼굴에 기회를 준다.


“양조위는 친한 친구입니다. 홍콩 남자배우 중 연기가 가장 대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사실 많이 일하지 않고(‘암화’ 포함 세 작품) 예전에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지난해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은퇴 전에 반드시 나랑 촬영한다고 약속했는데, (그가 너무 바빠서) 촬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두기봉-배우 양조위의 재회,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두기봉 감독은 끝으로 “오늘 멀리까지 와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교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영화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말,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사하다.


세계 49개국에서 온 255편의 영화, 세계 최초 공개 영화만 67편에 달하는 BIFAN은 오는 14일까지 계속된다. 부천까지 달려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Wavve)에서도 90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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