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외국인 고용허가 사업장' 아닌 것으로 확인…짙어지는 불법파견 의혹
입력 2024.06.26 14:13
수정 2024.06.26 14:13
인력파견업체 '메이셀'이 외국인 근로자와 계약하고 근무는 아리셀에서
메이셀, 아리셀과 법인 주소까지 같아…편법 파견위한 페이퍼컴퍼니 의혹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리셀이 불법으로 파견받았다는 정황이 짙어졌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리셀은 '외국인 고용허가 대상 사업장'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데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외국인 파견 노동자를 불법으로 투입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 파견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불법파견 의혹
이날 관련부처와 업계 등에 따르면 아리셀 박순관 대표 등 회사 측은 전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불법파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도급 인력으로, 이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 것은 인력 공급업체라고 주장했다.
아리셀 측이 이러한 답변을 내놓은 것은 '불법파견'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32개 업종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며,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이 가능한 업종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희생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았던 군용 일차전지 검수와 포장 업무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 근로자 파견을 금지한 조항 위헌소원 심판 결정문에서 '제품을 검사 및 포장하는 업무'도 제조업 근간이 되는 핵심업무로서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파견 가능 업종 확대를 주장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는 파견이 금지되지만 앞으로 파견을 허용할 업무로 '포장과 후처리'를 꼽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 것은 인력 공급업체라고 주장한 것도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파견에 해당하는지는 '계약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법과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다. 즉 근로자 개인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업체만이 업무지시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법원은 원청업체가 노동자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행사하는지, 노동자가 원청업체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등을 파견 여부 판단의 중요 기준으로 본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 것이 인력 공급업체라면 아리셀은 지휘·명령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업체 '메이셀'은 불법파견이 맞는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았다. 메이셀 측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는 아리셀에 공급하는 근로자에게 근무지로 향하는 통근버스 사진만 문자로 보내줄 뿐"이라며 "근로자들도 저나 저희 직원 전화번호만 알지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아리셀에 직접 갈 수도 없다"며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받았으면서 거짓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 모기업도 '불법파견' 관여 의혹…외국인 고용허가 사업장도 해당 안돼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 등 파견이 금지된 업종이어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한 경우'나 '일시적 또는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자를 파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리셀은 노동자 103명 가운데 정직원이 50명, 나머지 53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고 밝혔다. 파견을 통해 임시로 인력을 보충한 구조가 아닌 셈이다.
불법파견 시 노동자를 파견받은 쪽이나 파견한 쪽 모두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메이셀은 고용노동부에서 파견업체로 허가받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도 같은 수준의 처벌 대상이다.
아리셀뿐 아니라 모회사인 에스코넥도 아리셀과 같은 방식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파견받았거나 파견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메이셀 측은 언론에 4월까지는 '한신다이아'라는 업체명으로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법인등기를 보면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주소지로 전자·휴대전화 부품 제조업 등을 하는 한신다이아라는 업체가 설립돼있다. 메이셀도 아리셀과 법인 주소지가 같다. 메이셀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들과 계약한 뒤 아리셀에 인력만 공급하는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리셀은 외국인 고용 허가 대상 사업장도 아니어서 외국인고용허가(E-9) 비자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가 일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화재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자 신분은 재외동포(F4) 비자가 가장 많고, 방문취업 동포(H2) 비자, 결혼이민(F6) 비자, 영주권(F5) 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장이 H2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특례고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조업·건설업·농축산업 등 일부 업종과 300인 이하 근로자 혹은 자본금 80억원 이하 규모의 사업장 등에 한해서만 특례고용 허가가 가능한데, 아리셀의 자본금은 250억원으로 기준을 초과했다.
결국 관련 법규를 피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등 값싼 인력을 이용하기 위해 불법파견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며, 이러한 의혹은 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화재에 대한 아리셀의 안전관리 책임 여부 등과 함께 불법파견 여부도 조사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