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 '집단휴진 으름장' 첫 날…의료대란은 없었다 [데일리안이 간다 57]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등에 반발하는 의료계가 18일 '집단휴진'을 선언했지만 휴진에 동참한 의사들의 숫자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 주도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궐기대회에는 수천명의 인파가 운집하며 대정부 투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해 의정갈등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데일리안은 서울 강서구의 '미라클메디특구'를 찾았다. 이곳은 개원의 중심으로 200개가 넘는 병·의원이 몰려있는 의료특화지역이다.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라클메디특구는 대형병원에 가지 않아도 웬만한 진료과목은 모두 있는 곳이다보니, 인근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서울 외곽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찾는 곳이다.

발산역 인근에 위치한 한 대형빌딩에는 한의원과 치과를 제외하고도 외과·내과·피부과·통증의학과·성형외과·정형외과·정신건강의학과·비뇨기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안과까지 무려 11종, 13개의 의원이 있다. 이곳의 의원들을 모두 직접 방문해 본 결과 이날 휴진에 참여한 의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빌딩만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발산역 인근으로 다수 의원이 들어가있는 8개 빌딩의 병·의원 70여 곳을 모두 방문했지만 모두 정상적으로 진료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휴진하는 곳은 없었다.

이날 한 정형외과 의원에서 만난 환자 A씨는 "오늘 집단 휴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해서 아침에 전화로 진료여부를 확인하고 왔다"며 "이곳 정형외과 말고도 피부과 진료도 받는데 그곳도 정상 진료를 한다더라"고 전했다.

A씨는 "여기엔 개업의사들이 많이 몰려있어서 경쟁도 치열하다보니 휴진하면 환자를 다른 병원에 빼앗기게 될까 싶어 다들 정상진료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현실은 의협이 기대한 바와는 정 반대다. 의협은 지난 9일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정부 투쟁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확인했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전국 3만6371개 병·의원 중 1463곳만이 18일 휴진하겠다고 신고해 신고율은 4.0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협은 신고없이도 휴진에 동참하는 의사들이 더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휴진한 의원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개원의들은 휴진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는 전국 개원의에 대해 이날 오전 9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사전에 휴진을 신고하지 않고 무단으로 휴진할 경우 '불법 진료거부'로 규정하고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원의들의 미미한 휴진 참여와와는 별개로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의사 궐기대회에는 수천명의 인파가 운집하며 의협에 힘을 실어줬다. 이 집회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온 의사들 외에도 수업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의대생 및 학부모들이 대거 참여해 정부의 의대증원 철회를 촉구했다.

의대생 학부모 대표인 배희영씨는 연단에 올라 "바늘구멍같은 입시를 뚫고 의대에 입학한 자녀가 대견하다"면서도 "정부가 갑자기 의대를 증원한다고 하니 아이의 미래가 불안정해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성토했다.

배씨는 "특히 이번 사태와 같이 폭발적인 인원 증가는 의학교육의 질을 크게 떨어뜨림은 물론 의학 자체의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며 "교육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의대증원은 반드시 철회되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마지막으로 연단에 올라 "정부의 의료농단·교육농단에 맞서고 있는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리는 국민 건강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들을 심판해야 한다. 수십년간의 관치주의 후진 의료를 벗어나 전문가 중심 선진 의료로 진정한 대변혁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의대증원·필수의료패키지 등을 즉각 철회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며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또 한번의 집단 휴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