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미디어가 소환한 '과거' [D:방송 뷰]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4.06.15 11:03
수정 2024.06.15 11:03

버닝썬 사태 다룬 BBC 다큐가 일깨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BBC 다큐멘터리가 케이팝(K-POP) 스타들의 비밀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버닝썬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임을 상기시켰다면,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근황이 공개돼 촉법소년 기준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잊혀선 안 될 과거의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현실에서도 큰 파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유튜브 채널 ‘BBC 뉴스 코리아’를 통해 약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개하며 ‘버닝썬 사태’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현재 980만이 넘는 조회수와 3만 7000개가 넘는 댓글을 통해 해당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19년 클럽 보안요원의 고객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버닝썬 사태는 이후 성범죄 및 불법촬영, 마약투약, 경찰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번지며 게이트급으로 사건이 확대됐었다. 클럽 버닝썬은 빅뱅 출신 승리가 운영하던 클럽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준영, 최종훈의 집단 성폭행 및 불법촬영물 유포 사실까지 드러나며 큰 충격을 안겼다.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시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악플과 협박에 시달린 기자의 이야기부터 가수 고(故) 구하라가 가해자들과 경찰의 유착관계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까지,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로 시청자들을 주목시켰다.


가해자들이 받은 처벌의 수위를 짚는가 하면, ‘버닝썬’ 사건 이전 발생했던 정준영의 성폭력 피소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함께 조명하며 성범죄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를 고민하게끔 했다. 이후 ‘버닝썬 사태’와 관련이 있다는 오해를 받았던 고준희가 한 웹예능에 출연해, 당시 소속사에서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방치를 했다고 폭로하며 홀로 루머와 싸워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 토로해 버닝썬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임을 실감케 했다. 승리는 사업을 확장하고 정준영은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다시금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건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과거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된 청도군의 한 국밥집에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해당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사례도 있다.


이후 피해자 이야기 다룬 영화 ‘한공주’가 지난 11일 티빙 ‘실시간 인기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일부 유튜버들은 가해자들의 신상을 폭로하겠다고 나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해자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폭로는 옳지 않다는 의견과 개인이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지는 등 부작용도 없진 않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법체계에는 문제가 없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촉법소년의 기준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 자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은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 받게 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되어 2차 피해자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이들의 일상회복을 위한 성금 모금도 시작돼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JMS 정명석, 오대양 박순자, 아가동산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파헤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그들의 민낯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관련 사업체 불매 운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분노를 표했고, 앨범 체인점 신나라 레코드의 돈줄이 아가동산이라는 사실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면서는 일부 기획사들이 음반 예약 판매 목록 공지에서 신나라 레코드를 누락하는 일도 있었다.


미디어가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한다면, 시청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일부 유튜버들의 선 넘은 콘텐츠로 인해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으나, 그만큼 미디어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미디어가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필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최근의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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