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구조조정 본격화...증권사 부실채권으로 ‘반격 카드’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4.06.05 07:00
수정 2024.06.05 07:00

내달부터 사업장 정리 속도...추가 충당금 하반기 실적 변수

NPL 매물도 대량 출회 예상...펀드 조성 등 사업 기회 노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원장은 당국이 직접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나선 것과 관련해 금융사들이 정상화 작업을 미루면서 경·공매나 추가 충당금을 강조하게 됐다고 언급했다.ⓒ금융감독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작업이 다음달부터 본격화되면서 증권사들의 충담금 적립 부담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부실채권(NPL) 규모도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관련 펀드 조성에 참여해 손실을 만회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내달부터 부실 PF 사업장 정리를 가속화하면서 증권사들의 추가 충당금 쌓기가 하반기 실적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PF 사업장 옥석가리기로 부실채권 매물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사업 기회로 보는 증권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개선방안’에 따라 부실 사업장의 재구조화 및 정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 전체 230조원 규모인 PF 사업장의 5~10%가 재구조화와 매각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새 사업성 평가 기준은 기존 ‘양호, 보통, 악화 우려’ 3단계를 ‘양호, 보통, 유의, 부실 우려’ 4단계로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부실 우려’ 사업장은 상각 또는 경·공매를 통한 매각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또 종전에 ‘악화 우려’ 사업장은 금융사가 대출액의 3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했지만 앞으로 ‘부실 우려’ 사업장은 충당금을 75%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당국이 직접 PF 구조조정에 나선 것과 경·공매나 추가 충당금을 강조하게 된 점에 대해 금융사들이 정상화 작업을 미룬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복현 원장은 전날인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취임 2주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그간 금감원은 업권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왔지만 지난해 말 결산을 보면 더는 금융사와 최고경영자(CEO)의 선의만을 믿기엔 아닌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PF 정리 방식은 경·공매든 부실채권(NPL) 매각이든 상관없다”면서 반드시 부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이에 증권사와 저축은행·캐피탈사 등 2금융권은 추가적인 충당금 등 비용이 발생할 것이란 업계 전망이 나온다. 그간 증권사는 저축은행 등에 비해 선순위 대출이 높아 PF 위험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인식됐지만 평가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추가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PF 구조조정으로 금융권의 부실채권 매물이 대량 출회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NPL 사업을 신규로 추진하려는 업계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NPL은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의 부실채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빌려준 돈인 여신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누고 고정이하 여신을 NPL로 분류한다.


서울의 한 건설 현장 모습.(자료사진) ⓒ뉴시스

NPL은 PF 부실로 인해 은행권을 비롯해 2금융권에서도 부실채권 물량이 쏟아지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금융기관 NPL 규모는 43조7000억원으로 전년(28조1000억원) 대비 55% 급증했다.


업계에선 내달부터 PF 사업성 평가 기준이 강화되면서 경·공매 절차를 추진해야하는 사업장이 대거 등장, 부실채권 매물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그동안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우리금융F&I 등 NPL 전문 투자회사 중심으로 부실채권을 매입했지만 이를 신규 사업 기회로 삼는 증권사들도 늘고 있다. 향후 금리가 인하되면 가격 조정을 겪은 부실채권의 가치가 회복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4월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의 대체투자전문 운용사 TPG 안젤로고든과 업무협약을 통해 국내 NPL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 부동산 금융시장에서 저평가된 프로젝트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PF 관련 펀드를 조성해 우량 NPL 자산을 저렴한 가격에 담으려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월 농협금융그룹과 공제회 등이 자금을 조달해 2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기관전용사모펀드(PEF)를 조성했고 메리츠증권도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대출 펀드를 조성해 PF 관련 NPL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KB증권도 2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사모펀드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PF 구조조정 가속화로 오히려 증권사들이 NPL 펀드 조성 등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며 “리스크를 감수하고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주체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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