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발행 늘린 시중은행, 치솟는 환율에 긴장 고조
입력 2024.06.04 06:00
수정 2024.06.04 06:00
4대銀, 1Q 평균잔액 31조…전년 말比 1조6천억↑
원·달러 환율 1380원 재진입…평가손실 확대 우려
국내 4대 시중은행이 외화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이 올해 들어 석 달 동안에만 1조6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3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외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비싼 값을 치르며 외화 자금을 끌어오는 양상이다.
문제는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면서 환 손실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환율 상승에 따른 평가손실이 확대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발행 외채 평균 잔액은 31조282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4%(1조5918억원) 증가했다. 은행은 외채를 발행해 국내 은행이나 해외 금융기관에 매각함으로써 외화자금을 조달한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우리은행이 6조372억원으로 13.9% 늘어나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국민은행(10조3107억원)과 신한은행(8조9273억원)은 각각 6.3%, 3.3% 증가했다. 하나은행만 6조76억원으로 지난 3개월간 0.6% 소폭 감소했다.
은행들은 올해 들어 외채 발행에 따른 비용 부담도 증가했다. 우리은행의 지난 1분기 외채 평균 금리는 7.05%로 지난해(6.68%)보다 0.37%포인트 올랐다. 하나은행(6.30%→6.40%)·신한은행(5.88%→6.23%)·국민은행(3.75%→3.91%) 등 다른 은행들도 일제히 상승했다.
문제는 올해 들어서도 강달러가 지속되면서 환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채의 경우 외화를 기준으로 상각 후 원가를 계산한 후 사업 보고 기간 종료일의 환율을 적용해 원화로 환산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 손실은 금융 비용에 포함돼 순이익을 줄이며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기준 1376.1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연초(종가 기준 1300.4원)와 비교해 75.7원이나 오른 수준이다. 지난 4월 16일에는 장중 1400원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한·미·일 재무장관들이 공동 구두 개입에 나서자 원화 약세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일 1345.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원·달러 환율은 재차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1380원을 사이에 놓고 움직이며 현재 30원 이상 오른 상태다.
이처럼 환율 변동성이 또다시 확대된 것은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채 입찰이 부진했던 가운데 미국 경제지표가 여전히 견고한 수준으로 발표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장중 4.638%까지 오르며 약 4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은행이 금융 여건을 고려한 중립금리가 물가만 고려했을 때보다 높을 것이라고 언급한 점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진단이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의 속도 조절 신호가 나와줘야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며 환율 변동성도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지난주 외환시장에서 미국채 수급 이슈가 불안 요소로 작용한 만큼, 미국 금리 안정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원화가 달러화 지수 움직임에 좌우되는 현재와 같은 흐름이 상당 기간 계속되면서 강달러가 진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은행의 외화 부채에서 평가손실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환율 관련 보고서에서 “지난 2022년 미 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이후 원·달러 환율과 달러화 지수의 상관관계가 크게 강화됐다”며 “이에 수출 확대, 외국인 자금 순유입과 안정적 대외신인도 등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상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현실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일정 부분 하향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채권 시장이 평가하는 미국의 명목균형금리(중립금리)가 유로지역이나 일본에 비해 높은 만큼 달러화 지수의 구조적 강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