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던 집 도어락 바꾸고 출입한 세입자, 주거침입 아냐"…왜? [디케의 눈물 215]
입력 2024.04.25 05:08
수정 2024.04.25 05:08
피고인, 2019년 임대주택 퇴거…보증금 못 받자 도어락 교체 후 재입주
법조계 "보증금 받을 때까지 임대차 계약 존속…부동산 인도 의무 없어"
"권리 남아있는 상태서 출입, 정당행위…부동산 공실인 점도 참작 사유"
"추가 절차 안 밟고 출입한 점은 아쉽지만…보증금 못 받은 상황 고려됐을 것"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퇴거한 뒤 허락 없이 아파트 도어락을 바꾸고 출입한 세입자가 주거침입죄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 임대차 계약은 존속되고 임차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에 주택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정당행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권리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해당 부동산이 공실이었다는 점이 고루 참작대 무죄가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세종시 한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에 세 들어 살던 A(62)씨 등 11명은 2019년께 아파트 분양 전환 당시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거했다. 이들은 B 부동산 임대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퇴거한 뒤 회사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 승소 판결을 확정받거나 보증금 반환을 내용으로 하는 화해 권고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B 회사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고 임차인들은 해당 세대에 다시 거주하겠다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마저 거부했다.
이에 이들은 2022년 아파트 현관 도어락을 교체해 집으로 들어갔고 27만원 상당의 재물을 손괴하고 주거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1심은 "공공주택 특별법상 임대차 기간이 끝났어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는 임대차 관계가 존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피고인들이 오랜 기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금전적 손해를 입은 점 등을 고려하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임차인들은 회사를 믿고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채 퇴거했지만 회사의 회생 절차, 은행 부도 사실 통지 등으로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장기화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임대차보증금 반환과 임대차목적물 인도는 '동시이행관계'로서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 부동산을 인도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 사건의 경우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차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부동산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정당행위라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서 임차인으로서의 권리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고 해당 부동산이 아직 공실이라는 점이 고루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가람 변호사(법무법인 굿플랜)는 "분양전환 계약과 임대차 계약 별개의 계약이므로 통상적으로는 분양전환 계약 요건을 갖추지 못했어도 임대차 계약 자체의 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임대차 계약은 존속된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고의로 재물을 손괴한 행위는 엄밀히 따지면 재물손괴죄에 해당할 수 있으나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꿈으로써 점유를 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임차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구행위로 보고 무죄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기본적으로는 임차인에게 정당한 임차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임대인 소유 물건은 함부로 파손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주거를 점유할 법적 권한이 없거나 분양전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퇴거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의 권한이 있는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적 지배관계는 평온하게 유지되는 상태라고 본다"며 "1심 판단을 살펴보면 퇴거 후에 건물 소유자가 관리하고 있는 빈 공간에 무단으로 들어간 세입자의 행위는 주거침입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위법성 조각사유 중 하나인 정당행위였기에 무죄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증금을 주지 않는 임대인을 상대로 경매를 하거나 통장 압류를 하는 등 합법적인 추가 절차를 밟지 않고 동의 없이 건물에 들어간 행위는 아쉽기는 하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났고 임대회사도 은행 부도, 회생 절차 등을 겪어 사실상 지급 능력이 없었다는 특수한 상황을 법원에서 충분히 고려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