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五福) 중 하나인데…돈없어 치과도 못가는 노인들 [데일리안이 간다 54]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입력 2024.04.17 05:12
수정 2024.04.17 05:12

저소득 노인들, 치아 상태 안좋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악화

기초수급자 지원 있지만 틀니는 7년에 한번, 임플란트는 단 한번

정부 지원과 별도로 지자체에서 노인 치아건강 챙겨야

ⓒ게티이미지뱅크

건강한 치아는 오복(五福)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치과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년층으로 갈수록 많아져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에서 보장하는 기초수급자 치과 지원이 있긴 하지만 횟수가 한정적인 것이 문제다. 복지전문가들은 치과치료는 영양섭취 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노인 치과지원을 적극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16일 데일리안이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권모(75) 어르신은 위쪽 어금니 6개, 아래쪽 어금니 4개가 결손된 상태였다. 그나마 아래쪽 어금니 중 2개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유지되는 것이었고 앞니는 위쪽에 틀니를 끼워 자연치아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15개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으로 인해 중학교까지만 마치고 곧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권씨는 "40대 중반까지는 꽤 건강한 치아상태를 유지했다"며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사업이 부도가 났고 돈이 없어 치과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50대부터 치아 상태가 많이 안좋아졌다"고 전했다.


좋지 않은 치아 상태로 인해 가장 불편한 것은 식생활에 제약이 크다는 점이다. 그는 "씹는 것이 불편하다 보니 부드러운 음식만 찾게 되고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명절에 복지관에서 떡이나 고기가 나와도 가위로 잘게 잘라야만 겨우 먹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영양섭취가 부족하다보니 권씨의 지병인 저혈압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권씨는 치과 치료를 받을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기초수급비와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권씨가 한달에 손에 쥐게 되는 소득은 약 130만원으로,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이 드는 치과치료를 받는 것은 권씨에게 큰 부담이다.


정부에서 기초수급자를 위해 치과진료를 지원해주긴 하지만 임플란트는 65세 이상에 한해서만 지원하며 단 1회에 한해 1인당 2개까지만 지원된다. 틀니의 경우에는 7년에 한번씩 지원해주긴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권씨는 "60대에 어금니가 많이 빠져서 기초수급자 지원으로 임플란트 2개를 8년 전에 시술받았고 얼마 전에 위쪽 틀니를 지원받았다"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게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7년에 한번이라는 것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노인이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구강검진을 받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통계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로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율은 고령층일수록 높다. 2021년 기준 서울시 65세 이상 인구의 4.4%가 경제적 문제로 치과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이는 30~44세의 1.3%, 19~29세의 1.5%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지역별 편차도 컸다. 소득수준이 낮고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강북구의 경우 무려 10.3%가 경제적 문제로 치과치료를 받지 못해 서초구의 0.9%에 비해 12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및 복지전문가들은 치과치료를 노인의 건강권과 생존권 차원 문제로 보고 정부와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김상혁 교수는 "퇴행성 관절염이나 골다공증 등 노인성 골격질환 환자를 보면 치아 결손상태와 상당한 비례관계가 있다"며 "치아 건강이 좋지 않아 영양섭취가 제한되면 골격질환에 특히 취약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사망률을 높이는 결과가 된다. 노인 치아상태는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로 보고 정부가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바라기노인복지센터의 주성미 복지사는 "치아 문제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고통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며 "주민들과 좀 더 가까이 있는 지역 지자체에서 노인들의 치아 건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정부 지원 외에 지자체에서 노인들 치과 치료를 추가 지원하는 것으로 상당한 건강증진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자체장들이 어르신 치아 건강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