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판대기, 그리고 상바닥 [홍종선의 연예단상㊻]
입력 2024.03.21 09:42
수정 2024.03.21 09:55
셀럽의 이혼과 관련해 말도 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특히 여성에게 혹독했다. 여자 배우들은 누구에게 귀책 사유가 있든 심지어 남편의 폭력이나 범죄, 외도 등으로 이혼했어도 이혼 자체가 ‘죄’ 취급당했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지 못하고 가정을 깨트린 것처럼 인식되었고, 그것은 죄였다.
2024년, 한국은 다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복귀 시기를 고려해 이혼을 늦춰 공개하는 적은 있어도 보도만 되면 긍정한다. 흔히 말하는 도장 찍기 전, 이혼 조정 기간에도 불화를 인정한다.
최근엔 새로운 풍속도도 추가됐다. 남편일 수도 아내일 수도, 성별과 관계없이 조정 기간임에도 법적으로만 아내와 남편이지 심리적으로 이미 남이 된 상대를 향한 ‘화’를 글로 표출한다. 이혼의 원인에 관한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글이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 정도의 표현을 쓰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표현일 때도 있다.
최근 며칠, 대한민국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하는 표현이 있다. ‘상판대기’이다.
배우 이범수와 이혼 조정 중인 동시통역사 이윤진은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소설가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의 표지를 게재하면서 소설 속 문장을 일부 인용해 공개했다.
“다른 모든 것보다도, 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붉힐 줄을 모르는 그 뻔뻔한 상판대기는 다 무엇이오?”
이어 ‘불참석’ ‘회피’ ‘갑의말투’라는 해시태그도 붙였다.
정보가 적을 때 우리의 머리는 유추라는 걸 한다. 이 글을 올린 이를 분노를 일으킨 이가 죄, 부끄러운 일을 했나. 그러고도 ‘얼굴’ 붉어짐 없이 뻔뻔한 행태를 보이고 있나. 글을 올린 전날 이뤄진 첫 번째 조정기일에 이범수 측(이범수 또는 법정대리인)이 불참했고, 이윤진은 이를 이혼 회피로 받아들이고 있나. 이전에 ‘갑의 말투’를 상대에게 받았고, 지금 신소설 그중에서도 계몽소설 문장을 이용해 같은 말투로 대응한 것이라는 뜻인가.
팩트는 현재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글쓴이의 심경이 분노로 충만하다는 것은 전해 온다.
기본적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이 보도되는 것에 부정적이어서 기사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글로 적는 것은 자제한다. 당사자들보다 자녀를 고려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지금 이 글이 어리석은 선택이고, 후회를 불러올지 모르면서도 적기로 한 것은 어이없다고 하실 수 있으나 ‘인용 어구’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사와 방송에서 ‘상판대기’가 인용되고 있다. 글쓴이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혹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그와 같이 적을 수 있다. 소설의 재인용이긴 하지만, 그이가 적은 글을 인용하는 것이니 그대로 적고 있다.
여기서 뜻하지 않은 오해가 생기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 독자들이 이광수의 소설 ‘흙’의 문구, 그대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모든 것보다도 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붉힐 줄을 모르는 그 뻔뻔한 상바닥은 다 무엇이오?”
로 바로잡는다. 복수의 원전을 확인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