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보험 부조리에 생보업계 자승자박 [부광우의 싫존주의]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4.01.30 06:00
수정 2024.01.30 06:00

저축처럼 현혹하는 잘못된 관행

단기납 상품 열풍으로 극에 달해

GA 설계사 스카우트戰 부작용도

사치스런 구호 전락한 정도 영업

보험사 먹구름 이미지. ⓒ연합뉴스

"종신보험은 저축 목적으로 적절치 않습니다."

"종신보험은 사회초년생의 목돈 마련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종신보험을 둘러싼 민원과 불완전판매 우려가 크다며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종신보험을 저축 상품처럼 파는 생명보험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겨냥한 경고다.


종신보험은 생보업계에서 소비자 불만이 가장 들끓는 상품이다. 생명보험사들에 접수된 종신보험 관련 민원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970건으로, 일반 보장성 상품(1283건)을 여유 있게(?) 제치고 선두를 기록했다. 불완전판매도 지난해 상반기에만 2477건으로, 같은 기간 생보업계 전체 건수의 절반에 가까운 45.7%를 독차지했다.


다만 앞선 금감원의 메시지는 각각 2015년과 2021년에 나왔던 지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설계사들의 영업 포인트는 언제나 환급이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계산기를 내밀며 현혹한다. 비과세, 복리 이자, 재테크 등의 수식어들이 이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저축이나 적금인 마냥 떠들다 보니 자신을 은행 직원인 냥 소개하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부조리는 최근 극에 달했다.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10년 미만으로 확 줄이고, 납입 완료 후 가입을 3년 넘게 유지하면 낸 돈의 130% 이상을 돌려주겠다는 이른바 단기납 상품이 판을 쳤다. 보험사들은 최고 135%까지 환급률을 높이며 소비자에게 미끼를 내밀었다.


정직과 정도는 사치스러운 말이 됐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거나, 나만 깨끗해서 뭐하냐는 식의 기회주의가 당연해졌다. 사망에 따른 유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거나, 사업비를 유독 많이 뗀다거나 하는 종신보험의 본질과 단점은 최대한 가려졌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한 실타래는 새로운 비틀림을 초래했다. 더 많은 영업을 바라는 욕심은 무리한 고액 프로모션의 보험설계사 영입전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설계사 개인의 영업력에 보다 의존하는 독립법인대리점(GA)들이 자리했다. GA들은 경력 전속 설계사들에게 접근해 직전 연봉의 50~70%까지 일시금을 주겠다며 이적을 종용했다.


보험설계사에게 제공되는 이런 프로모션은 결국 고객이 낸 돈에서 나왔을 테다. 도를 넘은 지원비를 계속 메꾸기 위해 설계사는 더 많은 계약을 따내야 한다. 생존이라는 미명 아래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 와야 하는 의자놀이의 시작이다.


보험사도 대책이 없어 보이긴 피차 매한가지다. 고액의 종신보험을 이처럼 한꺼번에 팔아 놨으니, 훗날 고객에게 내줘야 할 돈도 한순간 몰리기 마련이다. 자금의 조달과 운용이 적절하게 맞물리도록 설계하는 금융사 경영의 근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내일 들어올 돈이 있어도 오늘 지급해야 할 돈이 없으면 그게 연체이고 부실이다. 어떻게든 될 거란 막연한 무사안일주의 속에서 시간만 흘러간다.


결국 금감원은 다시 생보업계를 압박하고 나섰다. 생보사들은 부랴부랴 단기납 종신보험의 환급률을 낮추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 시장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애써 모른 척 진실을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고 소란이 잦아들면 보험 본연의 기능을 호도하는 영업이 또 다시 횡행할거란 사실을.


잊고 지낸 옛 친구로부터 갑작스레 전화가 왔을 때 반가움보다 주저하는 마음이 앞서는 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서다. 모두가 알 듯 그 원인의 하나는 결혼 축의금이요, 나머지는 보험 가입이다. 사실 이렇게 쌓여 온 부정적 이미지를 가장 걷어내고 싶은 건 당사자인 보험업계다. 부단히 노력도 해왔다. 그럼에도 할 말이 없는 건 반복돼 온 본인들의 과오 탓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이었던 상앙은 철권통치를 관철하기 위해 사지를 찢는 거열형이란 형벌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앙은 죽은 뒤 자신이 만든 거열형으로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 스스로가 만든 일로 궁지에 몰리면 살아날 길이 없는 법이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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