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취임사 '동료시민'만 10번…오바마 스피치 오버랩 [정국 기상대]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3.12.27 00:00
수정 2023.12.27 05:04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한 '동료시민'

시민과 일체화…운동권 청산 '주체'로

"상식적 시민 대신해 이재명과 싸울 것"

2004년 오바마 연설과 비견되며 주목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사에 두드러진 단어는 '동료시민'이었다. 가치중립적 단어인 '국민'을 제외하면, '동료시민'이 10차례로 가장 많이 언급됐으며 한 위원장의 정치철학을 정확히 드러낸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취임사는 한 위원장이 지난 연휴 기간 직접 고심해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 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진행한 취임 연설은 '동료시민'에서 시작해 '동료시민'으로 끝났다. 한 위원장은 먼저 비대위원장을 수락한 이유로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설 말미에서는 "동료시민과 공동체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시느냐"고 물은 뒤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특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그런 세상이 와서 동료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을 두고 보실 것이냐. 그것은 미래와 동료시민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나아가 "이재명 대표와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 세력의 폭주를 막는 것은 우리가 이겨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지만 그것만이 목표일 순 없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위대한 대한민국과 동료시민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나은 정치를 가질 자격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료시민'은 한 위원장이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알려진다. 시민들의 연대와 동료의식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철학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 지난 21일 법무부 장관 이임식에서도 한 위원장은 "동료시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며 "특히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고 했었다.


특별히 취임사에서는 스스로를 '동료시민'의 한 명으로 일체화하면서 민주당의 특권·전체주의 정치 심판의 주체로 설정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 보수정당의 정치인 등 여야 정파가 아니라 보편적·상식적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당을 심판하고 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상식적인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개혁 공천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효과 극대화 시점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의원은 "개혁 공천이 목적이었다면 공천 심사에 맞춰 발표하는 게 효과가 더 좋았을 것"이라며 "취임하면서 불출마로 못을 박은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한 위원장의 취임사 속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코드를 찾아내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찬조연설 당시 "우리 모두가 하나의 국민으로 연결돼 있다"며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내 자식이 아니어도 그건 나의 문제고, 어딘가 살고 있는 노인이 약값을 못 내서 고민하고 있다면 그분이 내 할아버지가 아니더라도 나의 삶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미국 시민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바 있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갈라 놓으려는 정치꾼과 선동꾼들은 아무 정치나 팔아대고 있다"며 "그 사람들에게 민주당의 미국, 공화당의 미국이 아니라 하나의 미국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외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오바마는 이 연설로 미국 국민을 감동시켰고 4년 뒤 대통령이 됐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예전 정치인들은 '존경하는 국민' 등으로 국민을 타자로 여겼지만 (한 위원장은) 동료시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시민과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려는 새로운 정치 시도를 하는 것"이라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my favorite citizen' 같은 표현을 썼는데 비슷한 취지"라고 했다.


물론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입장이나 이준석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족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다만 이는 향후 행동과 결과로 평가받을 대목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에서 언어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며 "(선당후사가 아닌) 선민후사라고 했는데 어떻게 '선민'을 하는지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론은 나침반이라고 했는데 특검에 대한 국민 여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행동으로 나오느냐를 보고 비로소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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