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계기업 워크아웃보다 ARS가 재무조정 효과 뛰어나"
입력 2023.12.15 07:00
수정 2023.12.15 15:21
노현천 법무법인 하나 기업회생연구소 총괄국장
"다양한 회생 제도, 각 기업 특성 맞게 발전해야"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여파로 은행 대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지원책으로 가려졌던 부실기업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부상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빚에만 연명하는 기업이 아닌, 우수한 기술·사업성을 갖춘 기업의 회생 성공을 위한 법정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현천 법무법인 하나 기업회생연구소 기업법무팀 총괄국장은 15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업회생은 기본적으로 채권단의 희생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채무자(기업)를 살려주는 제도"라면서도 "기업의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다고 판단돼 회생에 들어가 성공할 경우, 채권자에게 변제할 수 있는 금액도 늘어나는 만큼, 돈 떼먹는 제도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업회생연구소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인수개발(A&D)과 DIP금융, 채무조정(워크아웃·기업회생), 상장폐지 방어 및 우회상장 등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금융·기업공개(IPO) 전문가 등이 모여 20년간 60여건의 M&A와 400건 이상의 기업회생 관련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 "은행권 워크아웃 문턱 높아…기업들 '문전박대'"
최근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일몰 기한이 오는 2026년까지 3년 연장되면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워크아웃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채권단(금융기관) 75%가 동의하면 이들이 주도하는 워크아웃이 진행되는데, 이자 납부 유예와 추가 대출 지원 등으로 기업 정상화를 추진한다.
노 국장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워크아웃을 통해 103개사 중 약 47개사가 부실을 해소하고 성공적으로 관리 절차를 종료했다"며 "워크아웃 성공을 위해서는 채권단인 금융기관의 과감한 지원, 경영진과 직원의 의지, 매출과 비용의 적합한 구성, 철저한 사후관리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 워크아웃은 다른 회생 제도와 비교했을 때 재무 조정 효과가 떨어진다고 노 국장은 평가했다. 주채무자인 은행들이 각자의 채권 회수에 몰두하는 본원적 한계 때문이란 지적이다.
노 국장은 "기본적으로 은행의 워크아웃 문턱이 너무 높아서 한계기업들이 제대로 시도해 보기도 전에 문전박대 당하고, 다른 제도를 이용하거나 파산 신청하는 사례가 많다"며 "워크아웃에서는 일반·상거래 채권자들은 배제되고 금융사만 대주단이 된다는 게 결정적 문제"라고 봤다.
이어 "워크아웃을 통해서는 대출 원금 감면을 기대할 수 없고, 일정 기간 이자 납부를 유예하거나 추가 신규 대출을 받는 것에 그친다"며 "이 과정에서 기업 경영이 처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은행들은 곧바로 채권 회수에 들어가기 때문에 (워크아웃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ARS 자율 협약으로 최대 70% 원금 감경 가능"
이에 한계기업 입장에서는 워크아웃보다 자율구조조정지원제도(ARS Program)나 사전조정제도(P-plan)를 활용할 경우 회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노 국장은 조언했다.
ARS Program은 법원이 기업의 회생 신청을 받은 뒤 보전처분과 포괄적금지명령을 내린 상태에서 최대 3개월 이내 회생 절차 개시를 보류하고, 채무자와 채권자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협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이때 채권단협의회에서는 은행뿐 아니라 일반·상거래 채권자들도 대주단에 포함되는 것이 최대 이점으로 꼽힌다.
이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동의(3분의 2 이상)를 얻기가 수월해질 뿐 아니라 자율협약에서도 워크아웃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약이 결렬되도 후속 절차로 채권단 2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P-plan을 진행할 수 있는데, 미달할 경우 통상적인 회생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노 국장은 "ARS는 개시 결정을 보류하고 법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채권단협의회에서 구조조정안을 가지고 자율 협약을 시도하기 때문에 은행이 주도하는 워크아웃과 다르다"며 "협약을 진행할 때도 P-plan과 통상적 회생 절차라는 차선책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만큼 매우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한 ARS를 통해서는 이자뿐 아니라 원금 감면이 가능해 워크아웃보다 재무 조정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노 국장은 "개시 결정이 나기 전에 법원에서 공인회계사를 사전 조사위원으로 위촉한다"며 "회사의 청산가치와 존속가치 등을 추정해 손익계산서가 나오면 자율협약에 나서게 된다"며 "은행들이 워크아웃으로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원금 감면이 가능해지는 것도 이 같은 추정 손익계산서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저당이 설정된 것 중에서도 회생 절차에 들어가 개시 결정이 나면 자산재평가를 진행하는데, 대출받을 때보다 감정가가 떨어진다"며 "자산재평가에 따라 근저당으로 잡혀있던 것보다 낮은 금액으로 담보권이 인정되면 나머지 금액은 일반 회생채권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여기서도 원금 감면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대출금리가 올라가도 매출이 이를 상쇄할 정도로 증가한다면 견딜만하겠지만, 전반적인 경기 침체 상황이라 우량기업이 한계기업으로, 한계기업이 좀비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기업회생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각 기업의 특성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태스크포스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