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은행·고령층이라서 보상?…흔들리는 '자기책임 원칙'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입력 2023.12.15 06:00
수정 2023.12.15 06:00

보상 검토, 적합성·재가입률 쟁점

판매·투자자 가이드라인 확립해야

투자 손실 포트폴리오 이미지. ⓒ게티이미지 뱅크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수조원대 손실 우려로 금융당국이 판매사인 은행권에 '불완전판매' 여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법규가 강화되며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이지만, 불완전판매 정황들이 포착되며 보상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ELS손실 우려 사태에 과도한 금융투자자 보호조치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허물어 자본시장 위축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 "90대에 90억원 팔아, 적합성 위반"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배상 비율 기준안 마련을 검토중인 가운데, 은행권에서 초고령층에게도 홍콩ELS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나며 논란이 거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당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60대 이상에게 판매한 홍콩H 관련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 판매 잔액은 6조4539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판매잔액(13조1307억8000만원)의 44.1%다.


이 중 90대 이상 고객 판매액은 90억 8000만원으로 은행들이 초고령층에게도 고위험 상품을 무리하게 판매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홍콩H ELS 투자자 모임 카페 등에는 "70대 모친이 은행직원의 권유로 5년간 특정 상품에만 수억원대를 넣어 큰 손해를 봤다" "예금을 가입하려 했더니 더 좋은 상품이 있다며 VIP실로 불러 가입시켰다" "원금 손실에 대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서 은행을 정면으로 비판한 만큼, 불완전 판매 여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원장은 "은행이 노후보장 목적으로 정기예금을 재투자하고 싶어하는 70대 고령투자자에게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적정했는지, 적합성 원칙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배상 기준은 앞서 발생했던 DLF와 라임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에서 참고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판매 적합성원칙, 설명 의무 이행 여부 ▲부당권유 여부에 따라 연령별로 40~80%의 배상비율을 정했다. 예를 들어 만 65세 이상 고령자나 주부에게는 5%포인트(p) 배상비율 추가, 파생상품 손실 유경험자면 10% 차감 등이다.



DLF 피해자대책위원회와 금융정의연대 회원들이 지난 2020년 12월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DLF 사태와 관련해 우리·하나은행장 사퇴 촉구 및 부실한 자율 배상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령층도 ELS 반복 투자...책임 가려야

한편에서는 투자자 책임론도 불거진다. H지수 연계 ELS 가입자의 약 90%가 ELS 투자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21년 3월 금소법 강화 이후 초고령층의 경우 파생상품 판매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은행원들도 기피하는 상황"이라며 "당행의 경우 초고령층은 판매 리스크도 커 KPI 점수 자체도 없을뿐더러, 90대 대부분이 ELS 조기상환을 여러번 경험하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ELS 상품 특성상 고령층의 자산가 투자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통계도 있다. 금감원이 2018년 6월 말 기준 ELS로 대변되는 파생결합증권 개인투자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투자자 75만명 중 50대가 29.8%로 가장 많았다. 1인당 평균 투자액은 70・80대가 압도적으로 80대 이상 평균 투자액은 1억7230만원이었다. 모든 고령층 투자자를 금융 취약층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불완전판매라 하더라도 그간 이익을 본 것에 대해서는 넘어가면서, 손실만 보면 세금으로 구제하는것은 불합리하다는 시선이다. 한 개인투자자는 "증권사에서 비대면으로 판매한 ELS에 대한 손실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주목조차 못받는데, 은행에서만 판매했다고 구제해달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은행권 ELS 상품 관련 불완전판매는 2019년부터 지속 제기돼왔는데, 실제 당국이 은행 판매 제재를 한 경우는 현재까지 7건에 불과하다. 당국이 은행에서 고위험 파생상품을 판매하게 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에서 홍콩 ELS 불완전판매 사안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일정 부분 손실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은행 ELS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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