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영부인 책임이 사라졌다 [기자수첩-정치]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입력 2023.12.09 09:00
수정 2023.12.09 09:00

이어지는 논란에 '아픈 손가락' 전락…지지층 피로감만 커져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선을 앞둔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른바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권력의 큰 비밀은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절대 더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헨릭 입센

"모든 권력의 비밀은 힘을 비축하라이다. 압력을 높이려면 낭비를 없애야 한다." 조셉 파렐


권력자의 책임에 대한 명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도 1년 7개월이 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대통령의 일보다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일들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윤 대통령 처남의 문서위조 혐의 △장모의 사문서 위조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 △최근 모 매체의 함정 몰래카메라까지 연일 시끄럽다. 헌데 '이렇다 할' 입장 발표도 없다. 지지율이 위태로운데 대선 때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고개 숙이는 모습도 찾기 힘들다.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회피로 일관한 사건들을 갈무리했다.


최근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함정 몰래카메라'다.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모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는 주장이 특정 성향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기됐다.


해당 유튜브 측은 선물을 구입한 사람이 자사 소속 '기자'라고 밝혔다. 이 영상 보도는 '몰카 취재' '함정 취재'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영부인이 해당 인물에게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파장도 커졌다.


이유는 '함정 취재'가 명백함에도 불거진 '의전의 책임'이다. 우선 상대는 국가보안법 위반 조사를 받아 친북 의혹이 있는 인물이다. 김 여사는 문자만 주고받았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대통령 취임식 외빈 만찬에 초청했다. 아쉬운 경호 절차였다.


대통령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당 유튜브 측에 대한 고소·고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질문에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수사 필요성에 대한 질문도 "가정을 달고 물어보면…"이라며 답하지 않았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대선 전 김 여사가 말한 '조용한 약속'은 깨졌다. 결국 논란이 되자 '내 탓이오'가 아닌 '모르쇠'다.


서울-양평고속도로는 가짜뉴스냐, 특혜냐를 규명하다 잊혀져 사업 백지화로 애꿎은 주민들만 고통받는 실정이다.


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종점이 '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뀐 데 대해 종점 일대에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토지가 있다며 진상규명 테스크포스까지 구성해 비난했다. 여당과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 공세 대상을 건수 잡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며 종점 노선이 변경된 의혹과 관련해 추진했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백지화로 양평 지역사회만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에서는 해당 사안이 지나치게 정쟁화됐다는 분위기다. 멀쩡히 생겨야 할 고속도로가 없어졌지만 지금도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이가 없다. 양평 주민들의 가슴이 답답한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역시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이 만든 억지 카르텔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여전히 명백한 입장은 없다.


토지 매입 과정에서 은행 통장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의 법정구속도 비슷하다.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법정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인데다 책임질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쯤 되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결과는 역시 회피와 외면이었다.


국민의힘은 '김건희 특검법'을 외치는 더불어민주당을 괴담 유포 세력으로 성토한다. 영부인과 관련된 잘못된 행동이 대통령 평판에 직결되는데,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했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없다. 애꿎은 국민, 지지자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엠브레인퍼블릭과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와 한국리서치가 지난 4~6일 설문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2%로, 직전 조사인 2주 전보다 3%p 하락했다. 반면 부정평가는 4%p 오른 60%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직전 조사와 같은 34%로 집계됐고, 더불어민주당은 4%p 오른 31%로 나타났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실과 영부인의 책임이 사라진 현재, 보수층 지지자들의 피로감만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김 여사가 '조용한 내조'로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김 여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층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전통적 보수 지지층으로 확산된다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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