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설득해 겨우 팔았는데…" 은행권 신탁수수료 확대 '제동'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입력 2023.11.30 11:46 수정 2023.11.30 11:48

DLF 사태로 5대銀 신탁수수료 급감

은행권, 잇달아 ELS 상품 판매 중단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사옥 ⓒ 각 사 제공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며 은행들이 잇달아 판매 중단 조치에 나섰다. 은행권은 제2의 사모펀드 사태로 번질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신탁수수료 이익 축소가 불가피 할 전망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ELS 판매 중단 여부를 검토중이다. 하나은행은 다음주부터 홍콩H지수 편입 ELT・ELF 상품 판매 중단 계획을 밝혔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ELS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홍콩 H지수 연계 상품 외에도 원금이 비보장되는 상품들까지 판매를 멈춘것이다. 현재 은행은 원금 보장이 가능한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만 운영하고 있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홍콩 H지수가 편입된 ELT 상품은 판매하지 않고 있다. 다른 ELT 상품은 가입자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12월부터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은 판매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타행 대비 판매 규모가 작은 우리은행은 H지수 편입 ELS를 최소한 수준으로 취급해왔다.


KB국민은행도 ELS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인 단계다. 다만 국민은행의 경우 타행 대비 판매액이 가장 많다 보니 고객 선택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의 H지수 편입 ELS 상품에 대한 공급 비중은 30% 이내 수준이다.


은행들의 이같은 조치는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손실 가능성이 기정 사실화됐기 때문이다. 6월 말 기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5000억원 규모인데, 이 중 15조8860억원 규모가 은행에서 판매됐다. 5대 은행에서 상반기 만기 도래 잔액은 8조4100억원 규모인데, 중국 기업들의 주가로 구성된 홍콩H지수가 관련 상품을 판매한 2021년 대비 6000포인트 아래로 급락하며 반토막 났다. 3~4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


수조원대 손실 위기에 금융당국까지 나섰다. 특히 H지수 연계 ELS 가입자의 상당수는 고령자로 나타나 은행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은퇴자들이 퇴직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목돈을 굴릴 상품을 찾자, 은행이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다며 ELS상품으로 유도했다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금지 규제를 재검토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ELS 시장이 위축될까봐 긴장하고 있다. 2019년 당시 은행들은 금리 연계 파생결합편드(DLF)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등으로 홍역을 치뤘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여파로 이듬해 자산관리(WM)분야 수익이 대폭 쪼그라든 것이다.


2019년 5대 은행의 신탁수수료는 9690억원이었으나 사모펀드 사태로 1년 뒤 실적은 7824억원까지 급락했다. 금융당국이 DLF 후속 조치로 은행 파생결합증권신탁(DLS)와 주가연계신탁(ELT) 등을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해 판매에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은행권 신탁수수료 시장은 다시 증가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올해 3분기 누적 5대 은행의 신탁수수료는 72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신탁수수료 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금융당국의 추가 규제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DLF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ELS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대책도 발표했지만, 은행권이 40조 규모의 신탁 시장을 잃을 수 없다고 반발한 끝에 무산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장이 70대 고령자에게도 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향해 날선 빞나을 쏟아내며 본격 규제 손질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난 펀드 사태 처럼 추가 규제 가능성이 높지만, ELS 판매 전면 중단은 은행 비이자이익 원천을 없애는 것이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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