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조치로 버려진 승객들의 시간 다시 살 수 없어…항공편 장시간 지연, 정신적 손해도 배상해야” [디케의 눈물 138]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3.11.16 05:08
수정 2023.11.16 05:08

아시아나항공 승객들, 항공편 지연으로 피해…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해 승소

법조계 "항공사, 항공편 지연 사실 빠르게 고지 안 해…조치 미흡에 따른 과실로 봐야"

"정신적 손해, 항공편 지연으로 승객들이 일정 제대로 수행 못 했는지 여부로 판단"

"지연시간 및 경위, 구체적 대응조치 등 제반 사정 종합적으로 참작해 배상액 산정"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본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모습.ⓒ뉴시스

항공편이 장시간 지연됐을 때 항공사가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면 승객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항공사가 항공편 지연 사실을 신속하게 고지하지 않은 점을 법원에서 큰 과실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흡한 조치로 버려진 승객들의 시간을 다시 살 수 없는 만큼 그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을 충분히 인정한 의미의 판결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모 씨 등 269명이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지난달 26일 확정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2019년 9월 13일 오전 1시10분께 태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로 했으나 기체 결함으로 결항했다. 항공사는 결항 사실을 뒤늦게 승객들에게 알리고 숙소를 제공했으나 대부분 승객은 당초 예정 시각을 훌쩍 넘겨 13일 오후 11시40분에야 한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승객들은 항공사를 상대로 1인당 70만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몬트리올 협약'이 규정하는 손해란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손해를 모두 포함하므로 이에 근거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봤고 대법원도 항공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사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국제 항공편을 이용한 운송에 적용되는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협약' 제19조는 '운송인은 승객·수하물 또는 화물의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정한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일반적으로 기체의 장치 결함 혹은 천재지변 발생 등에 따른 항공편 지연의 경우 항공사의 실질적인 통제를 벗어난 불가항력적 사유라고 보고 손해배상 면책 사유로 인정한다"며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항공기 출발 지연에 대해 항공사에서 승객들에게 신속하게 고지하지 않았기에 조치 미흡에 따른 과실이 크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승객들마다 미팅, 연주회, 여행 등 중요한 일정이 있었을 텐데 항공사에서 빠르게 지연 사실을 알리거나 다른 대체 항공편을 제공했다면 피해가 적었을 것"이라며 "항공사의 미흡한 조치로 인해 버려진 승객들의 시간과 일정은 다시 살 수 없는 만큼 그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을 충분히 인정한 의미의 판결로 보여진다"고 강조했다.


ⓒgettyimagesBank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모든 청구에는 청구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판결에서는 정신적 손해배상에 한해 그 근거가 국제 항공편을 이용한 운송에 적용되는 '몬트리올 협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법에 있다고 본 것이다"고 전했다.


전 변호사는 그러면서 "정신적 손해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데 이러한 사건에서는 항공편 지연으로 인해 청구인들이 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는지 여부로 판단한다"며 "액수를 정할 때는 ▲지연에 이르게 된 원인 ▲지연시간 및 항공편의 지연 경위와 결과 ▲지연 발생 이후 피고의 구체적인 대응조치 내용 ▲항공편의 운항거리 ▲소요시간과 운임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대법원은 몬트리올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손해는 재산상 손해 만을 의미할 뿐 정신적 손해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신적 손해는 국내법 기준에 따라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며 "민법 제751조 제1항에서는 타인의 신체, 자유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재산상 손해 배상에 의해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인데 항공사 측의 재산상 손해 배상이 미흡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법원에서는 제반 사정을 참작해 배상액을 직권, 재량으로 정하게 되는데 실무상 일정 유형에 대한 위자료 산정의 기준치가 정해져 있어서 재판부도 이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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