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책임제’ 부활…식품‧외식업계, 근본이유 빠진 ‘미봉책’ 비판
입력 2023.11.07 06:14
수정 2023.11.07 09:51
대통령까지 나서 물가잡기 강조
‘부처 차관=물가안정책임관’ 인상 억제
기업 “인건비‧물류비 부담 산더미”
전문가, 인상 배경‧인상률 등 들여다 볼 때
외식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에 한동안 눈치 보던 기업들이 최근 연이어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어서다. 기업들이 원가 인상 압박이 심해지자 정부에 사실상 반기를 든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각 부처 고위관료들이 앞다투어 현장으로 달려가 물가 잡기에 뛰어들더니 이제는 아예 품목별로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는 물가 책임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시 한 번 기업들에 가격 인상 자제 메시지를 낸 것이다.
지난 2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면서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 책임관’이 돼 소관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무·배추 같은 신선식품부터 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서민 체감도가 높은 품목에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하나하나 체크하며 물가 조이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최근 다시 식료품 및 외식 가격 오름세가 더해지면서 서민들의 고물가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대응은 과거 이명박 정부 때와 판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대 총선을 석달 앞둔 2012년 1월 국무회의에서 생활 물가 품목별 담당 공무원을 정해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않게 하는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 도입을 주문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미지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정부가 집중 관리하기로 한 7개 품목은 전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스낵과자·비스킷 포함)에 불과하다. 또 정부 압력으로 기업들이 당장은 가격을 동결하더라도 나중에 한꺼번에 가격을 올리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정부가 라면, 빵 등 특정 품목을 지목해 ‘두더지 잡기 식’으로 구두 개입하며 가격 동결이나 인하를 이끌어 냈다. 일례로 올해 초 소주 가격 인상설이 나오자 기획재정부가 소줏값 인상 요인을 점검하겠다고 했고, 가격 인상을 막아냈으나 하반기를 넘기진 못 했다.
지난 9월만 하더라도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농식품부가 식품·외식업계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자 관련 기업들이 일제히 호응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추석 이후부터는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식품·외식업계에서는 남은 4분기 가격 인상이 더욱 본격화 될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추가 실리는 모양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격을 내리거나 버티고 있지만 기업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할 요인들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인건비 물류비에 더해 부담이 산더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 소비자들에게 밀접하고 대부분 바로 취식할 수 있는 제품 위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기업들이 얼마나 감내하고 지속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기업들의 어려운 점은 매번 간과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물론 외식업계 인상 폭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가공식품 제조사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출고가격을 올리면, 외식업체가 더 높은 가격의 메뉴판을 제시하면서 결국 최종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 폭만 더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외식업계 관계자는 “외식업은 이미 원자재, 인건비 상승이 가파르게 오른 가운데, 정부가 이야기하는 관세 공제 등에 대한 실질적인 체감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외식업은 본사 직영보다는, 가맹점주들의 눈치를 봐야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물가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특정 품목에 대한 통제 보다는 상승 배경과 상승률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들여다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책임제’까지 들고 나왔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다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명박 정부 때도 50개 정도 집중 관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도 성과내기가 어려웠다. 물가라는 게 정부가 관리를 통해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물가가 전부 치솟은 상황에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보다는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편승해 가격을 올린다든지, 과도한 인상률 등을 자제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