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도 야도 다 싫다"…강서 보궐 민심, 역대급 정치불신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3.10.04 14:15
수정 2023.10.04 14:18

시민들, 극한 정쟁 신물 "관심 없다"

자영업자·상인 중심으로 특히 냉담

'빌라를 아파트로' 먹혔나…개발 관심

세입자와 집주인 엇갈린 반응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좌)와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 ⓒ뉴시스

22대 총선을 앞두고 유일하게 치러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며 저조한 투표율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선거 결과가 중요한 표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서울·수도권 표심이 총선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보궐선거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정치권의 열기와 달리 지역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와 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민생을 돌보지 않고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컸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강서구 방화동 방신전통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여성 한모 씨는 "길도 좁은데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찾아와 신경 쓰이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시장을 둘러보고 지나간 다음의 반응이었다. '혹시 민주당을 지지하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씨는 "그놈들도 똑같다"며 "대표가 단식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장사가 안 돼 강제 단식을 할 판"이라고 성토했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60대·남)도 "요즘은 정치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며 "우리와는 하등 관련 없는 일로 말싸움을 하는 데 관심이 없다. 누가 구청장이 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 주변에도 다 비슷한 반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방화동뿐만 아니라 화곡동 등 구도심 지역도 특정 정파가 아닌 정치권 전체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했다. 화곡본동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50대·남)는 "홍범도 흉상 이전이니 개고기 금지니 정부가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다"면서 "정부에 따끔한 소리를 해줘야 할 야당은 이재명 구하기나 하고 있으니 다 꼴 보기 싫다"고 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한산한 모습의 서울 강서구청 뒷편 먹자거리 ⓒ데일리안

강서구청 먹자골목에서 15년째 갈비찜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강모 씨(50대·남)는 "마곡 신도시 활성화와 코로나 시기가 겹치면서 강서구의 핫플레이스였던 강서구청 먹자골목이 완전히 죽었다"며 "특별히 기대도 없었지만 예전에는 적어도 정치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다른 세상 얘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재개발이 주요 이슈인 공항동과 방화동, 까치산역 일대에서는 구청장 선거에 큰 관심을 보이는 구민이 적지 않았다. '빌라를 아파트로'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고도제한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을 띄운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의 전략이 적중한 대목이다. 물론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는 엇갈렸지만, 경쟁자인 진교훈 민주당 후보도 개발 공약을 들고나오는 등 선거판을 주도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까치산역 인근 A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물론이고 가끔 외부에서도 고도제한 문제나 지역 부동산 경기에 대해 문의가 들어온다"며 "세입자들이야 대규모 개발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겠지만, 집주인들은 자신들의 가계와 직접 관련이 있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실제 지역에서 모아주택 지정을 추진 중인 지모 씨(60대·남)는 "김포공항이 있다는 이유로 고도제한과 소음 등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좋은 주거환경에 대한 열망들이 강하다"며 "개발 인허가를 비롯해 사업 추진에 적극성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후보에게 표가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곡 4동에 거주 중이라는 안모 씨(50대·여)도 "신문과 뉴스에 매일 이곳이 대대적으로 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힘 있는 분들이 와서 약속을 하는데 믿어도 되는 것이냐"고 관심을 보인 뒤 "아무래도 개발과 같은 큰 일을 하려면 야당보다는 여당의 구청장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반면 개발에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화곡역 출근길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안모 씨(여)는 "세입자로 살고 있는데 개발이 된다고 하면 또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만 늘어날 뿐"이라며 "지역 특성상 좁고 어두운 골목이 많은데 안심 귀갓길 확대와 같이 안전 대책을 내놓은 후보에 더 정감이 간다"고 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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