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실리 모두 살렸다…'과방위원장 사퇴' 내건 장제원의 묘수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3.07.25 06:00
수정 2023.07.25 06:00

장제원 "8월내 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시

민주당 원하는대로 과방위원장직서 사퇴"

'상임위 정상화·대선공약 현실화' 재시동

"개인정치 없을 것" 선언 재차 주목받기도

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상화와 연내 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가 장제원 위원장의 한 마디에 재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여야 간 정쟁 속에 회전을 멈춘 국회 업무와 국가를 위한 대선 공약을 "과방위원장직을 걸겠다"는 한 마디로 해결한 것이다. 이에 우주항공청과 관련한 민주당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장제원 과방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국민께선 하루 빨리 과방위를 정상화하고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키라는 준엄한 명령을 하고 계시다. 민주당 위원의 결단을 촉구한다"며 "8월 내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켜주면 과방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장 위원장은 지난 두 달간 여야 협상 결렬 과정을 시간순으로 상세히 기술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장 위원장 선출 후 처음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는 파행됐다. 국민의힘은 "우주항공청 법안 처리부터 하자"고 했고, 민주당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KBS 수신료 관련 현안 질의를 하자"고 맞서 회의 안건조차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파행을 막기 위해 장 위원장은 이달 4일 간사회의를 주재하고 △업무보고와 현안질의(11일) △우주항공청 공청회(18일) △법안 의결(25일)을 위한 전체회의 및 법안1·2소위(각 1차례) 등 의사일정 합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 농성을 이유로 답변을 미루다가 "과방위는 민주당의 요구에도 아예 문을 닫고 있다. 집권당의 직무유기"라는 답변을 돌려줬다.


나아가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지난 12일 물밑 합의를 무시하고 △과방위 파행에 대한 위원장 사과 표명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변호사 선임 철회 △우주항공청 특별법안 관련 과기부 자료 제출 △대통령이 이동관 특보를 방통위원장에 지명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해왔다.


이에 장 위원장은 13일에 재차 2차 위원장-간사 회동을 주재해 "7월 의사일정을 민주당이 원하는 날짜에 모두 맞추겠다. 법안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도 민주당이 정하라"고 야당에 결정을 백지위임했다. 하지만 이번에 민주당은 KBS 수신료 관련 방송법 소위 회부를 명시하고 전체회의 상정 시 KBS 관계자를 배석시키자는 요구를 포함한 7가지 요구안을 꺼내들면서 협상은 두 번째로 결렬됐다.


장 위원장은 이 같은 요구를 일부 수용해 17일 △유감표명과 과방위 정례화 △우주항공청 관련 법안 빠른 시일내 결론 △소위에서 비쟁점법안과 가짜뉴스 대책, 포털 알고리즘, 알뜰폰 대책, 망이용 대가 등을 논의하고 수신료 관련 방송법 등에 대해서는 상정요건이 갖춰지는 대로 논의 △7월 의사일정은 20일 2소위, 25일 전체회의, 26일 오전 공청회, 26일 오후 1소위 개최 등 최종 절충안을 만들어 민주당에 제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KBS 수신료 통합징수 강제 법안의 소위 회부 문서화'를 내세우며 과방위 정상화에 합의하지 않았다.


장 위원장은 "취임 이래 과방위 정상화를 위해 물밑에서 여야 간 일정 조율에 안간힘을 써왔지만 민주당은 세 차례나 말을 바꾸고 새로운 조건을 제시해 협상을 결렬시켰다"며 "이 과정에서 겉으로만 우주항공청 설치에 찬성하며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를 끝끝내 훼방 놓으려는 민주당의 속내를 분명하고도 절실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임위원장 직권으로 과방위를 정상화하겠다"며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업무보고와 현안질의, 31일 우주항공청 공청회를 실시하겠다. 이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지난 5월 30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 같은 장 위원장의 선언은 여당 내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당내에선 장 위원장의 결단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형두 국민의힘 경남도당위원장은 "장 위원장이 우주항공청 특별법 8월 통과 시한을 내세웠다. 만약 야당이 통과시켜준다면 과방위원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며 "민주당은 더 이상 대한민국 미래가 걸린 우주항공청 특별법 발목잡기를 중단하고, 우주 강국 노력을 다해주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도 이날 성명에서 "장 위원장이 8월 중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켜준다면 민주당이 그토록 원했던 위원장직 사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면서 "이는 우주항공청 설치 근거인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달 국회 과방위에 상정됐지만 야당의 발목잡기로 통과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풀이했다.


정치권에선 장 위원장이 내려놓겠다고 했던 과방위원장직이 갖는 의미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 지난해 7월 여야가 원 구성을 위한 상임위원장직을 줄다리기를 벌일 때 가장 큰 긴장감을 줬던 자리가 바로 과방위원장이었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영방송 정상화 등 현안이 산적한 과방위원장 자리를 절대 내줄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1년씩 과방위원장을 돌아가면서 맡기로 합의했다. 이에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과방위원장을 맡았다. 장 위원장이 과방위를 맡은 건 지난달부터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 시작했던 만큼 여야 간 충돌이 잦았던 과방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를 지속해왔다. 계속된 파행으로 인해 671건의 법안이 과방위에 계류돼 있다.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우주항공청이 올해 말 출범하려면 정기국회를 넘기지 말아야 하는 만큼, 과방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은 과반의 의석을 점유한 야당을 상대로 국정과제 법안 통과를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자리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장 위원장의 선언이 이번 일을 통해 확인됐다는 시각도 있다. 장 위원장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정치를 하면서 단 한번도 자리를 탐하거나 자리를 놓고 거래한 적이 없다. 사심 없이 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윤 정부 5년 동안 장제원의 개인 정치는 없을 것"고 선언한 바 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상임위원장을 괜히 '의원의 꽃'이라고 하는 게 아닌데 그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하는 걸 보면 진심이라고 봐야하지 않겠느냐"라며 "(사퇴 선언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고 있어서 놀라긴 했지만 상임위 재개라는 명분과 국가 발전이란 실리를 한 번에 잡은 발언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민주당을 넘어간 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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