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간 승강기 잡은 택배기사, 욕설한 주민 밀쳐 숨지게 했지만... [디케의 눈물 93]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3.07.07 04:53
수정 2023.07.11 09:14

법조계 "피해자 어깨 밀친 정도 심하지 않다고 본 듯…상해 심하지 않다면 사망 예견 못 해"

"피고인, 승강기 6분 잡아둬 비난 여지 있지만…상해치사죄 양형 결정에 결정적 요소 아냐"

"사후 대처 유무, 양형에 중요한 고려요소…교통사고 '사고 후 미조치' 처벌과 동일한 이치"

"유족 합의 못 했으면 집행유예 어려웠을 것…항소심 가더라도 '1심과 같은 판단' 나올 것"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복도식 아파트의 승강기를 오래 잡아뒀다고 욕설한 입주민을 밀쳐 숨지게 한 택배기사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범행해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치 못했고, 유가족과 합의한 점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피고인이 6분간 승강기를 잡아뒀다는 점에 대해 "비난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상해치사죄의 양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7일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 김태업)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된 30대 택배기사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1월10일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입주민 B 씨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려 머리를 크게 다치게 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 씨는 택배 업무를 하느라 엘리베이터를 6분여간 잡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B 씨가 "XX놈아"라고 욕설을 하며 택배 짐수레를 발로 차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를 밀쳐 넘어뜨렸다. 이후 병원으로 실려 간 B 씨는 2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못해 닷새 후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 재판에서 배심원 7명 모두 유죄를 평결했고 상해치사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죄 결과에 대해 모두 반성하고 있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다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범행 직후 119에 신고한 점과 유족과 합의한 점, 집행유예를 평결한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우면 김한수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깨를 밀친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해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사망에 이르리라고 예견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형량을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상해치사죄는 대표적인 결과적 가중범"이라며 "기본 범죄인 상해죄에 내포된 잠재적 위험이 실현된 점에서 가중처벌을 하는 것이므로 기본 범죄 행위가 중하지 않다면 이를 양형사유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 사건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판사 출신 법무법인 판율 문유진 변호사는 "만약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이 안 되었더라도 재판부는 비슷한 형량을 선고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엘리베이터를 6분가량 잡아뒀다는 점에서 비난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점이 상해치사죄의 양형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 변호사는 '피고인이 범행 직후 119에 신고한 점'을 재판부가 양형사유로 본 것에 대해 "실제 판결을 할 때 피고인의 사후적 대처 유무는 양형판단에 매우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더라도 그 즉시 피해자를 빠르게 구조했더라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라며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쳤을 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와 별도로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을 경우 '사고 후 미조치'로 처벌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고 부연했다.


김소정 법률사무소 김소정 변호사는 "유족과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이 긍정적 양형인자로 가장 주요하게 작용됐다고 볼 수 있다. 유족과의 합의가 없었다면 집행유예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본다"며 "피고인이 시비에 휘말려 우발적으로 밀쳤을 당시 피해자가 사망할 것이라는 예견까지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설령 항소심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원심과 같은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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