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이 아동 심리상담 보장 못하는 이유 [기자수첩-금융증권]

김재은 기자 (enfj@dailian.co.kr)
입력 2023.07.04 07:00
수정 2023.07.04 07:58

비전문가·비의료기관 해당 안 돼

선량한 피해자 없도록 지급 막아야

아동 돌봄 이미지. ⓒ연합뉴스

실손의료보험의 보장 대상은 어디까지일까.


한 보험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예기치 못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아동 발달 지연과 관련한 심리상담은 실손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다. 보험사와 병원 사이의 신경전은 물론, 전국 500만가구에 달하는 육아맘들의 이해관계까지 걸린 초미의 관심사다.


현대해상은 지난 달부터 이 같은 놀이상담 등에 대해 실손보험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결정의 배경에는 역시 수지 타산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해상이 발달 지연에 대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해마다 불어나며 지난해에는 700억원에 달했다.


아이를 둔 고객들과 의료계는 보험사가 치료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마스크 착용이 늘면서 발달 지연 아동들이 늘어난 와중 보험금을 차단하는 꼴이 되면서 이른바 국민 정서법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새다.


갈등은 법정으로까지 향할 분위기다. 대한소아청소년과행동발달증진학회 등은 공식 기자회견까지 열고 현대해상에 대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렇다면 정말로 보험사는 단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비난을 감수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럴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그 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결단이기도 하다.


논리는 심플하다. 실손보험은 의료인과 의료기사에 의한 의료 행위만 보장한다. 쉽게 말해 의사가 아닌 이에게 받은 상담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발달 지연 아동 진료 기관에 있는 대부분의 상담사는 관련 민간 자격증을 갖고 있을 뿐, 의학적 지식을 가진 전문 의료인으로 볼 수 없다. 자격기본법에 따라 의료 업무에 대해서는 민간자격을 신설하거나 운영·관리할 수 없어서다. 의사의 지도를 받아 상담을 받았다한들, 이런 심리 상담·발달 재활 센터 등은 비(非) 의료기관이다.


이런 경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쪽은 의료계다. 대한의사협회는 관행적으로 처방·시술 등의 의사 업무를 일부 대리해 온 진료보조 간호사 제도화에 반대하며, 이들에 대해 자격이 없는 진료 보조 인력이라 지칭한 곳이다.


이번 논란의 이면에는 부모들의 절실함이 담겨 있다. 보험업계가 쉽사리 강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잘못을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다. 누군가에게 주는 보험금은 다른 누군가가 낸 보험료다. 원칙에 어긋난 배려의 이면에는 다른 이의 손해가 깔려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는 법이다.

김재은 기자 (enfj@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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