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㊶] ‘해병 복싱 듀오’, 新 히어로 콤비의 탄생 (사냥개들)
입력 2023.06.28 07:58
수정 2023.06.28 07:58
영화 ‘청년경찰’ ‘사자’ ‘멍뭉이’…‘콤비 맛집’ 감독 김주환의 첫 드라마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히죽거렸다. 건강하고 활기찬 ‘해병 복싱 듀오’가 주는 에너지 덕분이다.
‘라켓소년단’(2021)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이후 다시금 ‘사냥개들’(연출 김주환, 극본 김주환, 제작 스튜디오N·㈜씨앗필름·㈜세븐오식스, 채널 넷플릭스)에 스포츠선수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번엔 복서다. 배드민턴, 펜싱, 복싱…스포츠를 작품에 주요하게 활용하면 발생하는 힘이 있다.
‘사냥개들’의 주인공들, 김건우(우도환 분)와 홍우진(이상이 분)은 복싱 듀오다. 신인왕전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파죽지세로 상대 선수들을 물리치고 결승에서 맞붙은 두 사람, 백중세 속에 건우의 레프트 원펀치가 승부를 갈랐다. 실은 오른쪽 주먹이 더 센데, 상대 선수의 안전을 고려해 왼손만 쓴 결과다.
복싱을 사랑하는 가난한 청춘이라는 것만 빼면 건우와 우진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진이 오두방정형이라면, 건우는 과묵형이다. 그래도 상금 1000만 원 가운데 딱 5만 원으로 삼겹살을 사겠다며 손을 먼저 내민 건 건우였다. 건우는 신인왕전 다음날 바로 체육관으로 달려가는 모범생형이고, 일주일은 쉬라는 관장에게 ‘뭐하면서 쉬어요?’라고 묻는 ‘일상 바보’다. 반면 우진은 산전수전 다 겪고 일찍 생활인이 된 현실 빠꼼이다.
극과 극의 우진과 건우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있었으니 순수한 열정, 그리고 해병대 정신이다. 실상, ‘사냥개들’은 대놓고 해병대 출신, 해병대 정신을 강조한다. 주인공 홍우진(1216기)과 김건우(1207기)가 ‘해병 듀오’인 것은 기본. 허준호가 연기한 최태호 사장 아래서 일을 배운 사채업자 문광무(734기, 박훈 분)도 해병대 선배이고, 최태호의 과거 오른팔 칼잡이이자 현재 일식집 사장인 황양중(571기, 이해영 분)도 전설의 해병대다.
특히 홍우진은 ‘해부심’(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만큼 해병에 경도돼 있고(드라마에서는 ‘오도’라고 표현되는데, ‘온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거나 열중함’이라는 뜻의 ‘경도’로 추정). 문광무는 채용 면접의 중요한 기준으로 해병대를 삼는 데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의 정신으로 팔 부상 상태에서도 깁스를 깨고 건우와 우진의 김명길(박성웅 분) 제거 작전에 뛰어든다. 황양중은 웬만해선 개인신상을 드러내길 꺼리지만, 까마득한 해병대 후배 우진과 건우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김건우는 해병대 정신 그 자체다. 순수한 초심으로, 누군가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성취를 이룩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주는 ‘복서의 심장’을 외치는 스포츠맨인 동시에 전진만 있을 뿐 후퇴는 없고 귀신도 잡는데 김명길을 못 잡을 리 없다는 필승의 다짐으로 똘똘 뭉쳤다. 우진에 비해 늘 조용하고 수줍어 보였지만, 한 번 나서면 처음 마셔보는 ‘푸른’ 양주를 글라스로 내리 원샷 해도 끄떡없는 철인이다.
건우와 우진은 척 봤을 때부터 한 쌍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예상 그대로 함께 자란 형제처럼 손발 척척 맞춰 가며 팀플레이를 펼치는데. 그래도 가장 멋진 ‘환상의 콤비’일 때는 바닥을 치고 난 뒤다. 이두영(류수영), 황양중, 최태호에게 변고가 닥친 뒤, 오인묵 기사(민경진 분)의 그늘 아래로 피신해 ‘와신상담’할 때부터 둘은 일심동체 한 몸 같은 단짝이 된다.
연회색 윗도리에 빨간 반바지를 세트로 맞춰 입고 합숙 훈련을 하는데, 군 복무를 하는 것인지 사부도 없는 쿵푸 사원에 들어가 극기 단련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결심이 단단하고 훈련 강도가 매섭다. 건우와 우진, 우진과 건우 두 사람은 실로 진지한데, 진지할수록 보는 우리의 웃음은 커진다. 어두운 음기 속 단련이 아니라 활기찬 양기 속 훈련이 절묘한 코미디 차력 콤비의 연습으로 보인다.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우직함, 순수함, 꼼수를 모르는 정직한 실행이 기분 좋은 웃음을 부른다.
숨 돌릴 겨를 없는 고된 훈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력의 ‘해병 복싱 듀오’가 된 건우와 우진은 이제 속세로 돌아와 뜻한 바를 향해 달려간다. 1차 타깃은 야망이 커서 더 위험한, 악랄한 사채사업가 김명길이다. 복수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정의다. 드라마 초반엔 그저 죽이 잘 맞는 두 남자의 패기에 흐뭇했다면, 이제는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 같은 육체와 물러섬 없는 돌진력으로 잘못된 바를 바로잡아 ‘공정’을 실현하려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우리가 있다.
건우와 우진이 몸만 커지고, 행동력만 세져서 목표한 상대는 끝내 제압해 물어뜯는 사채업계의 양아치 ‘사냥개 둘’이 됐다면 드라마 ‘사냥개들’의 쾌감은 미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쾌걸 조로가 두 명이 된 것도 모자라 유머마저 알게 된 듯 활력도 두 배, 재미도 두 배를 선사한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따로인 게 아니라 마치 합체해 ‘건우진’이라는 새로운 히어로가 되듯 천하무적 ‘해병 복싱 듀오’가 됐다. 그들이 가는 길에 승리만이 있다고 해도 과장으로 보이기는커녕 고개가 끄덕여지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이다. 시즌 1이 최강 듀오의 탄생 스토리였다면 시즌 2에는 어떤 활약상이 담길지, 웬만해선 당할 자 없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히어로 콤비’가 해결할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일지 벌써 궁금하다. 속 시원~한 한방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