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㊾] 문어를 명배우라 부를 순 없는 건가요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3.06.21 08:34
수정 2023.06.21 08:56

‘나의 문어 선생님’께 배우는 배우란, 사람이란, 인생이란…

나의 문어 선생님 ⓒ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dahamida


배우: 연극이나 영화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로 분장하여 연기를 하는 사람.

영화배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흔히 엑스트라를 제외한 주역과 조역 연기자들을 이른다.


배우를 사람에 국한한다면 오늘의 주인공은 배우가 아닙니다. 영화를 인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에 근거한 극영화로 한정 짓는다면 오늘의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닙니다.


익히 연기재능이 뛰어난 강아지 등 동물이 등장한 영화는 많고, 그들을 배우로 볼 수 있다면 오늘의 주인공도 배우입니다. 그중에서도 생의 희로애락을 절절히 표현하는 명배우입니다. 다큐멘터리도 분명 영화인 걸 생각하면, 오늘 소개할 배우는 당당히 주역을 맡고 있으므로 영화배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격다짐해서라도 소개하고 싶은 이는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감독 파파 엘릭, 제임스 리드, 배급 넷플릭스)의 문어입니다.


어디에 문어가 있는지 보이시나요 ⓒ 이하 넷플릭스 예고편 화면 갈무리

문어는 참 묘한 무척추동물입니다. 먹물을 근거로 글자를 안다고 얘기되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싶을 만큼 머리가 아주 좋아서 주변 환경을 이용한 위장술에도 능하고 코코넛 열매껍질이나 큰 조개껍데기를 들고 다니다가 적이 나타나면 숨을 줄도 압니다. 영화를 보노라면 반려견이나 어린아이 수준으로 똑똑해서 서양인들이 문어를 두고 지구에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문어가 단지 똑똑해서 ‘나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인생의 절벽 끝에 몰린 듯 불안과 불면증,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무작정 찾아간 남아프리카에서 만난 이 문어를 통해 인간이 누구이고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배우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일하려 해도 할 수 없고, 아내나 아들처럼 아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잘 풀지 못하던 그를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이가 바로 문어입니다.


우리 문어 배우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

물론 문어는 크레이그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제한된 환경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인간의 시간으로 고작 1년여의 생이 주어진 ‘문어의 일생’을 관찰하면서 크레이그 포스터 감독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놀랍게도 영화를 보노라면, 나는 분명 남아프리카 바다에 있지 않고 액상화면 너머에 앉아 있음에도 크레이그 감독이 문어에게서 받은 위안을 함께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장면 하나하나가 귀하고 버릴 것이없습니다만만. 독자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시길 바라기에 아주 살짝만 소개하자면. 오늘 소개하는 이 배우, 암컷 문어는 어른 손바닥만 한 시절에 크레이그와 조우합니다. 그런데 어찌나 묘하게 매력적인지 자꾸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화면 구석구석을 기웃기웃하면 마치 카메라가 잡지 못한 ‘앵글 밖’에 있는 그를 만나게 될 것 같은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싱긋 웃는 눈웃음이 예쁜 주연배우 문어 양ⓒ

드디어 문어가, 바위 아래 숨어 있던 그녀가 다리 하나를 뻗어 크레이그의 손가락을 ‘터치’할 때면, 언어만 다를 뿐 ‘이심전심’ 서로에게 좋은 방향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해할 의도가 없음이 서로에게 전해졌다는 기쁨에 제 가슴이 벅찹니다. 마음이 통하는 상대, 내게 친구라도 생긴 것처럼 기쁩니다.


오랜만에 발견한 마음 맞는 친구, 어제 봤는데 오늘 또 보고, 오늘 만났는데 내일 또 만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가던 어느 날. 불행은 행복을 앞세워 오듯, 그만 문어의 천적 바다상어가 출연합니다. 배우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오토바이 추격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미가 유발되는 가운데. 몇 번이고, ‘저 문어는 연체동물이 아니라 사람임에 틀림없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적으로 우월한 방법을 써서 상어를 따돌리던 우리의 주인공이 그만! 심각한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잠적….


끼어들 수 없는 생태계, 내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 ⓒ

이제는 다시 못 보는 걸까, 그녀의 생사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지속되고. 드디어 재회! 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배우가 선사하기 힘든, 다채로운 감정의 파노라마를 선물하는 문어 배우에게 감탄이 일 텐데. 동물의 타고난 생물학적 대의명분, 나의 2세를 잉태하고 다음 세대를 부화시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극진한 모성마저 느껴져 숙연함이 밀려옵니다.


여느 배우는 주기 힘든 기쁨과 반가움, 긴박감과 긴장미, 감격과 감동, 마음에 평화를 주는 이 문어에게 ‘배우’라는 수식어가 과한 걸까요. 필자의 눈에는 명배우를 넘어 어느 순간, 사색하고 교우하고 반성하고 전진하는 사람, 동료로 보였습니다.


어딘가 닮은 문어와 사람 ⓒ

사실 크레이그 포스터 감독이 먼저, 문어와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많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영화 ‘아바타’가 말하듯 자연과 우리는 연결돼 있고 우리는 자연에 대한 지배자도 파괴자도 아닐뿐더러 그저 자연의 작은 부분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미미한 존재인 게 아니라 되레 귀한 존재라는 것을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도 얘기합니다. ‘아바타’가 사람이 지어낸 미래공상과학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대기술을 총집약한 3D 표현 방식으로 전한 메시지를, ‘나의 문어 선생님’은 자연 그대로의 바닷속 우정을 통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내가 이 우주에서, 지구 생물체계에서 어디쯤 위치한 누구인지를 유념하여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가 찾아서 걸어가야 할 그 길에 등 하나를 비춰 줍니다. 문어 그이도 알고 살다 간 길, 우리 눈을 가리는 부유물들을 걷어내면 생각보다 명쾌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본질에서 멀어지게 한 것, 불면과 우울에 시달리게 하는 것, 그것이 정말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자문하는 오늘입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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